*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애니'는 영국 동부의 한적한 해변마을 역사박물관에서 일한다. 전성기 한참 지난 한적한 휴양지의 나날은 변함없는 일상의 반복이다. 애니에겐 동거 중인 남자친구 '던컨'이 있다. 미국에서 건너와 지역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그와 함께 지낸 지 벌써 15년째이지만, 둘은 법적 결혼이나 2세 계획은 없다. 그저 둘이 오붓하게 살기로 정한 지 오래다. 가끔 그 생각이 흔들리긴 하지만.
함께 15년을 지냈으니 둘의 사이는 나쁠 리 없다. 다만 던컨의 취미생활이 문제다. 그는 25년 전 마지막 앨범 발매 뒤 공연 도중 사라져 소식이 끊긴 록스타 '터커 크로우'의 열혈 팬이다. 이 신비로운 존재에 흠뻑 빠진 그는 팬클럽 사이트를 이끌며 전 세계 터커 크로우 팬들 사이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가수는 사라졌지만, 온라인에서 팬들은 그의 행방을 추적하고, 온갖 일화를 공유하며 애절한 외사랑을 이어간다.
애니 역시 동거남 덕분에 터커 크로우에 대해 어느새 웬만한 팬클럽 회원 못지않은 지식을 갖춘 지 오래다. 하지만 자신과의 삶에 집중하지 못하고 밤마다 지하실 비밀 아지트에서 온라인 팬클럽 활동에 탐닉하는 던컨 때문에 서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애니는 이제 2세에 관한 생각이나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에 끙끙 앓건만, 던컨은 걱정을 함께 나눌 짬이 없다. 애니가 보기엔 주인공은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데 중년 남자들끼리 갑론을박하는 행태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집에 우편물이 도착한다. 음반회사 다니는 던컨의 지인이 최근 발견된 터커 크로우의 미공개 데모 음원을 보내준 것이다. 우편물은 오는 족족 '언박싱'하던 습관에 따라 애니는 앨범을 열고 음원을 들어본다. 하지만 그 순간 들이닥친 던컨은 감히 자신이 신처럼 떠받드는 가수의 희귀음원을 먼저 들었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고, 속 좁은 행동에 애니는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질 지경이다.
분을 참지 못한 애니는 익명으로 던컨이 교주처럼 군림하는 팬클럽 사이트에 터커 크로우의 새 데모 음원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기고한다. 그런데 인상 깊게 잘 봤다며 자신도 의견에 공감한다는 메일이 도착한다. 발신인 '터커 크로우'다.
위기의 커플을 유머러스하게,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