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시대"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에이썸 픽쳐스
'에드워드 양'(양덕창)은 대만 예술영화를 대표하는 이름 중 하나다. 흔히 대만 '뉴웨이브' 3대 거장을 손꼽을 때 그와 함께 <비정성시>의 허우 샤오시엔, <애정만세>의 차이밍량을 거론하곤 한다. 대만영화 암흑기이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 이름들이 없었다면, 세계 영화계에서 대만영화는 잊힌 이름이 되었을지 모른다. 따로 또 같이 이 3명의 감독은 독자적인 작가 세계로 전 세계 예술영화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다. 이는 국내도 의외가 아니다. 서구 거장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지명도와 함께 예술영화극장이나 영화제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회고전 행사는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그런 '3대 거장' 중 에드워드 양은 특이한 존재다. 중화권 감독인데도 다른 2명과 달리 오직 그만 영문 이름으로 호명된다. 동남아시아 화교 출신인 차이밍량이나 본인 스스로 에드워드 양과 자신을 '서울쥐와 시골쥐'의 차이라 언급한 허우 샤오시엔의 출발점이 에드워드 양의 작품세계를 결정적으로 차별화한다. 그는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해 영화공부를 했고, 중도 포기한 뒤 캘리포니아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전업해 기술자로 일했지만 결국 영화의 꿈을 놓지 못한다. 출발 자체가 상당히 늦은 편이다.
영화 자체가 서구의 기술적 산물이다 보니 일단 3세계 '시네마 키즈'라면 정지영 감독의 1994년 영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일단 추종하고 베끼면서 시작해야 한다. 따라 할 모델이 부재한 국내 영화보다 '할리우드'가 더 익숙하고 가깝다. 에드워드 양도 대만/중화권 영화 전통보다 오히려 동시대 서구 영화에 더 친근한 출발을 경험한 셈이다. 그런 감독의 영화는 현대 대만의 어떤 특정한 단면을 포착하고, 세계와 연결되는 찰나를 추적한다. 에드워드 양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만의 변화상이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다.
그의 영화는 대만 뉴웨이브 중에도 '시티팝' 감성이 짙은 동시에 미국 독립영화 전통, 서구 모더니즘 사조와 결합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도출된다. 에드워드 양은 대표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등으로 한국 '시네필의 시대' 초기부터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던 감독이지만 근래 들어 재조명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감독의 영화가 처음 소개될 때 아직 영화를 볼 나이가 아니던 21세기 젊은 영화인들은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인 감독의 30, 40년 지난 작품들에 열광하며 예찬을 숨기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은 에드워드 양의 영화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부모세대의 시간대를 대리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 주목받았던 독립영화 대표작들, <벌새>나 <남매의 여름밤> 같은 작업은 공통되게 '노스텔지아' 회고적 정서와 과거 시대상을 접목하는 배경을 지닌다.
이들은 자신이 겪지 못한 시공간을 재구성하는데 한국 고전보다 오히려 일본이나 대만의 작가주의 감독들이 보여준 해당 시간대 작품들을 참조한다. 한/중(대만과 홍콩 포함)일 동아시아 인접국들은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상호연결된 역사성과 함께 경제성장과 서구화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그래서 진입장벽도 낮고, 동시대 세계영화 흐름과 조응하는 세련된 일본이나 대만 뉴웨이브 작가들에게 더 호감이 가고 영향받은 셈이다.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에드워드 양의 영화를 렌즈와 필터로 삼아 21세기 한국 청년영화인들은 20세기 후반을 조망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시간을 초월한 감독과 그의 작품이 유지하는 인기를 설명할 방도가 없다.
에드워드 양의 작품세계를 확장 체험하게 해주는 이색적 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