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색 - 블루"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천재로 추앙받는 음악가 '빠뜨리스'와 결혼해 천사 같은 딸 '마리'를 낳고 남편의 작곡을 도우며 공사 양면에서 완벽한 부부로 살아가던 '줄리'는 가족의 교외 나들이에서 예상하지 못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남편과 딸은 모두 생명을 잃고 혼자만 살아남은 줄리는 차라리 같이 죽었으면 하는 심정일 따름이다. 가족의 장례식도 병상에서 녹화된 영상으로만 간신히 확인할 뿐이니 비통한 마음 견딜 길이 없다. 약을 먹고 죽어보려 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육신의 상처는 치유되지만 줄리의 영혼은 공허하기만 하다.
줄리는 떠올릴수록 더 상처를 헤집듯 괴로운 가족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다.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다면 좋으련만 심정일 테다. 그는 남편과의 추억을 의도적으로 지워나간다. 추억 가득한 저택을 팔고, 남편과의 미완성 작업 원고를 폐기해 버린다. 언론과의 일체의 접촉을 거부하고, 지인들에게 행방을 알리지 않은 채 교외의 아파트로 몰래 이사한다.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고, 누구와도 사적인 교감을 나누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다.
남편은 유럽 통합을 기념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 일환으로 의뢰받은 '유럽 통합을 위한 협주곡'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실은 줄리 본인도 남편의 작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세상은 빠트리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미완성 프로젝트 향방에 촉각을 기울인다. 남편의 음악적 동료이던 '올리비에'는 자신이 친구의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완성하고자 줄리의 협력을 원한다. 실은 올리비에는 친구의 아내를 오랫동안 연모해 왔고, 줄리 역시 이를 잘 안다. 그저 모른 척 외면해 왔을 뿐이다. 올리비에가 몇 달간의 수소문 끝에 자신을 겨우 찾아내지만, 줄리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어떤 작업도 거부로 일관한다.
줄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허 속에 지내고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새 거처로 옮겨온 이후 한동안 줄리는 세상과 어떤 연결도 거부한 채로 지낸다. 그에게 남은 건 과거 살던 집의 것과 비슷한 샹들리에와 딸의 추억이 깃든 유품 일부에 불과하다. 줄리는 동네 카페에서 정해진 메뉴,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시고, 꼭 필요한 생필품만 구매한 뒤 집에 틀어박힌다. 동네 수영장에 출입하며 물속에서 외부와 단절되는 체험 정도가 그가 집중력을 발휘하는 유일한 전부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평생 살 수 없다. 이제 30을 갓 넘긴 줄리다. 아래층에는 나이트클럽 댄서로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자가 산다. 단지 주민들이 그를 내쫓자는 서명을 받으러 오지만, 굳이 남 일에 관심이 있을 리 없는 줄리는 서명을 거부한다. 며칠 후 줄리의 집 문을 두드린 아래층 여자 '루실'과 정서적 대화를 이어가며 그는 원치 않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 간다.
한번 틈이 열리자 카페 맞은편 골목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부랑자 행색의 거리 음악가에게도 관심이 가고, 오랫동안 왕래가 적었던 치매로 투병 중인 어머니도 찾아가게 된다. 루실이 어느 날 급히 도움을 요청한다. 그의 일터로 급히 간 줄리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죽은 남편의 비밀을 우연히 목격하고, 그저 잊고만 싶었던 과거와 대면해 정리할 것을 결심한다.
주인공이 찾는 자유의 의미를 뒤늦게 포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