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발매된 너바나의 박스 세트 'When The Lights Out' 표지. (왼쪽부터 데이브 그롤, 커트 코베인, 크리스 노보셀릭)
유니버설뮤직
취준생들은 종종 록커가 된다. 할 거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뭘 하겠는가. 노래나 불러야지. 솔직히 그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전자 기타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상성이란 궤도를 이탈하다 못해 철저히 박살 낸 사람들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부러워할 법한 것들을 비꼬고 모두가 싫어하는 외로움, 소외감, 무능력에 대해 물고 늘어진다.
당신께 추천하는 밴드는 '너바나(Nirvana)'다. 이름부터 작살난다. 불교에서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진리를 깨달은 '열반'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굴함을 노래했다. 평론가들은 이들이 '사회적 소외'를 노래했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사회라는 역할극에서 깍두기도 맡지 못한 이들을 대변했다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취준생들은 '너바나'와 한 몸이 된다. 벌써 지원서 떨어진 것만 몇 번째인가.
1991년 발매한 앨범 < Nevermind >의 다섯 번째 트랙 < Lithium >은 무기력한 체념을 토해낸다. 일요일 아침도 다른 날의 아침과 다를 바 없는 백수인 화자는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 자신이 추해 보여도, 마음에 맞는 친구가 상상 친구일지라도, 머리를 밀어버릴 만큼 외롭더라도 말이다. 계속해서 부서지지 않을 거라는 가사는 반드시 행복해질 거란 말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해당 앨범은 총 13곡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트랙 < Smells Like Teen Spirit >은 잘하는 걸 가장 못하는 화자가 저급한 자신을 기쁘게 해달라며 유희한다. 세 번째 트랙 < Come as you were >은 청자에게 원래 모습으로 다가오라며 우리는 '친구'이고, 필요한 건 '기억'이라고 강조한다. 이어진 트랙에서도 너바나가 건네는 메시지는 같다. 우리는 최악이다. 그럼에도 존재한다.
너바나는 누추함을 기워입는 밴드다. 곳곳에 숨겨진 별로인 모습을 꺼내 엉성한 별을 그린다. 그들이 만든 소우주는 초라해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자들만 입장할 수 있다. 그러니 다가오는 명절에는 과감히 쪼그라들어보자. 괜히 예의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성실하게 취업 준비 중인지 설명하지 말고. 내 안에 감춰진 불안을 꺼내 너바나의 악보 사이로 걸어 놓아도 좋다.
특히 너바나처럼 록 음악은 귀성길에 제격이다. 가족들끼리 모인 차 안에서 잔소리가 나오거나 근황을 물을 때 틀기 좋다. 소리가 웅장해서 어른들의 목소리를 감추게 하고 가사가 우중충해서 왠지 건들면 안 될 거 같은 인상을 준다. 나는 이 방법을 몇 번이나 써먹었다. 그때마다 나의 록(Rock)에 치인 어른들은 차에서 내리면서 말없이 용돈을 주시거나 등을 두들겨 주셨다. 추천한다.
신해철 같은 어른은 신해철밖에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