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명절, 한가위 어떻게 보내시나요. 장시간 귀성길의 피로, 부모님의 잔소리,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의 쏟아지는 질문들 앞에서 잠시 볼륨을 켜 보세요. 명절 스트레스를 녹여 줄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
두통약은 챙겼고, 비타민도 먹었고.
명절의 시작은 약을 챙기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1년에 2번. 빨간날이 적어도 3일에서 5일까지 이어지는 대혼란의 기간을 버텨야 하니 언젠가부터 두통약과 비타민은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결혼 전이나 신혼 때 찾아오는 명절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결혼 전엔 직장 생활에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게 연휴였다. 달력에 빨간날이 하루라도 더 있길 바랐다. 그중 명절 연휴가 되면 며칠 동안 출근도 안 하고 어찌나 좋던지, 엄마가 차려주시는 명절 최애 음식을 먹고 친구를 만나는 등 여유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신혼 때도 그나마 나았다. 남편과 함께 오붓하게 달리는 고속도로는 낭만이라는 게 있었다. 차가 막혀도, 시댁에 가서 전을 부쳐야 해도 그 시간에 내 몸만 챙겨서 움직이면 됐다. 쉴 틈은 존재했고, 양가를 다녀온 후 명절 마지막 날엔 남편과 쇼핑을 하는 등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결혼 12년 차, 네 아이의 엄마가 되니 명절은 쉬는 날이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날로 의미가 변해 있었다. 한 달에 하루 정도 있을까 말까 한 공휴일은 귀여웠다. 명절은 사방에 지뢰가 깔린 날들이었다. 시작부터 험난하다. 늦잠은커녕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노는 아이들 성화에 수면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넷 중 하나가 아프기라도 하면 연휴에 문을 연 병원을 찾아 진료받기에 급급했다. 잘 있다가 집을 떠나기 전이돼서야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가겠다는 녀석, 물을 왕창 흘려 옷을 갈아입겠다는 녀석 등 변수를 챙기다 보면 출발 시간이 예상보다 30분씩 늦어지는 건 일도 아니다.
명절이 다가올 때면 빨간색으로 칠해진 날짜가 하루라도 적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과 함께, 불쑥 생겨나는 대체공휴일을 째려보며 원망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렇게 한 해 두 해, 명절을 보내다 보니 이 시간을 원만하게 보내려면 '잘 버티는 요령'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차 안에 울려 퍼지는 네 아이의 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