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특수부대원 암리트(락샤 분)는 남몰래 사귀는 연인 툴리카(타냐 마닉탈라 분)가 인도 굴지의 운송 회사 사장인 아버지 발데브(하르쉬 차야 분)의 강압에 못 이겨 다른 남자와 약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는다. 정략 약혼식을 치른 툴리카는 가족과 함께 뉴델리로 향하는 야간열차에 탑승하고 암리트도 연인을 되찾고자 동료 군인 바리쉬(아비쉑 차우한 분)와 뒤따른다.

그런데 열차가 출발한 후 승객으로 위장한 베니(아쉬쉬 비다르티)와 그의 아들 파니(라가브 주얄 분)가 이끄는 40여 명의 무장 강도가 본색을 드러낸다. 열차를 장악한 무장 강도단은 사람들을 위협해 금품을 빼앗고 급기야 납치와 살인까지 저지른다. 아비규환에 빠진 열차 안에 있던 암리트와 바리쉬는 툴리카와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킬> 영화의 한 장면

▲ <킬> 영화의 한 장면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흔히들 인도 영화라 하면 청춘 남녀의 연애, 복잡한 가족사 등 통속적인 이야기를 보통 3시간이 넘어가는 상영 시간에 인도 고유의 음악과 화려한 군무로 꾸민 뮤지컬 영화 '마살라'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국내에 개봉한 <춤추는 무뚜>(2000)와 <세 얼간이>(2011)가 대표적인 마살라 작품이다.

요즘 인도 영화엔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젊은 계층의 서구적인 취향과 해외 시장의 입맛을 겨냥해 마살라를 벗어나거나 혹은 창의적으로 변형한 작품들을 연달아 내놓으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중이다. 그 결과 <RRR: 라이즈 오어 리볼트>(2022)는 인도 영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았고 SF 영화 <칼키 2898-AD>는 북미 박스오피스 5위에 올랐다. 샤룩 칸이 주연을 맡은 <자완>2023)과 미국과 인도의 합작 영화 <몽키맨>(2024) 같은 인도 액션 영화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킬>(2024)은 40여 명의 무장 강도와 2명의 특수부대원이 열차에서 싸우는 내용을 다룬 인도 액션 영화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니킬 나게시 바트 감독은 오래전 기차를 타는 동안 깜빡 잠이 들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무장 강도들이 약탈을 벌인 사실을 안 그는 자신이 잠에서 깰 정도로 무장 강도단이 무서운 짓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게 되었고 여기에 2010년 인도-네팔행 기차에서 군인이 칼 한 자루로 수십 명의 무장 강도에 맞섰던 실제 사건을 녹여 열차에서 펼쳐지는 무자비한 액션인 <킬>의 각본을 만들었다.

<킬> 영화의 한 장면

▲ <킬> 영화의 한 장면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킬>은 고층 건물에서 악당들과 싸우는 <다이 하드>(1988)와 <레이드: 첫 번째 습격>(2012), 열차를 배경으로 삼은 <언더 씨즈 2>(1995)와 <불릿 트레인>(2022), 평범해 보이던 남자가 핏빛 복수에 나서는 <존 윅>(2014)과 <노바디>(2021) 등 액션 장르의 낡고 친숙한 설정에 충실하다. 그러나 인물이 '싸운다'만큼이나 '변한다'에 무게를 실었다.

<킬>은 막을 올리고 45분이 흐른 후에나 제목이 나온다. 영화를 2개로 나눈 것이다. 전반부의 암리트는 무장 강도를 죽인 동료를 나무라는 등 폭력을 절제하는 모습이다. 이와 달리 연인 툴리카가 파니에게 살해된 다음부터인 후반부의 암리트는 무장 강도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살인 기계에 가깝다. 제목 <킬>은 악당들의 '살인'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복수심에 불탄 주인공의 '살인' 혹은 죽어버린 '내면'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시원한 복수의 카타르시스보단 도덕성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폭력의 순환을 탐구하길 시도한다.

미국의 대중문화 잡지 '버라이어티"는 <킬>을 "입이 딱 벌어지는 강렬한 액션의 향연!"이라고 평가했다. 영화는 열차라는 극히 제한된 무대에서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객실, 복도, 열차 위 등 내부와 외부를 오가며 공간을 훌륭하게 활용한다. 때론 조명을 달리하여 단조로움을 피한다.

액션의 잔혹함도 상당하다. 단순히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는 수준을 넘어 사람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 심지어 산채로 불태워버리기도 한다. "인도에서 나온 가장 폭력적인 영화"란 평가가 전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 액션+슬래셔 무비다. <존 윅> 프랜차이즈를 탄생시킨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과 라이온스게이트가 함께 리메이크를 결정했다는 소식인데 피비린내로 진동하는 잔혹한 액션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무척 궁금하다.

<킬>의 액션 연출 맡은 한국 무술 감독

<킬> 영화의 한 장면

▲ <킬> 영화의 한 장면 ⓒ (주)더쿱디스트리뷰션


<킬>의 생생하며 거칠고 창의적인 액션 연출은 <최종병기 활>(2011), <용의자>(2013), <설국열차>(2013), <공조>(2017) 등 수십 편의 한국 영화에서 수준 높은 액션 장면을 보여준 바 있는 오세영 무술 감독이 맡았다.

그는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액션인 만큼 배우들과 3개월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했으며 특수부대원인 주인공에겐 군사 전투 스타일을, 무장 강도단엔 각 캐릭터에게 어울리는 무술과 고유한 무기를 제작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칼과 총, 망치와 도끼 외에도 소화기, 문, 변기, 커튼, 손잡이, 라이터 등 기차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무기로 활용하여 볼거리가 풍성한 액션을 설계했다고 부연한다.

<킬>은 모두에게 즐거운 극장 경험은 아니다. 잔혹한 액션 영화이기에 불편할 수도 있거니와 거의 비슷한 기차 칸에서 다른 기차 칸으로 옮기는 상황을 반복적이라 느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인물 간의 관계도 투박하고 악당들도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다. 악당의 동기 역시 약하다. 계급적 차별과 세대 간 분열 묘사도 얕은 단계에 머문다. 각본의 완성도가 높지는 않다는 소리다.

반대로 <존 윅> 시리즈, <레이드> 시리즈, <악녀>(2012), <헤드샷>(2016), <아토믹 블론드>(2017), <밤이 온다>(2018), <노바디>, <카터>(2022), <시수>(2023) 등 높은 수위의 '미친'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즐거운 극장 경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제목에 제대로 부응하니까 말이다. 오세영 무술 감독은 <킬>의 감상 포인트로 리얼한 액션과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꼽았다.

"어떤 배우도 전혀 대역 없이 모든 장면을 소화한 만큼 모든 장면이 진짜처럼 느껴질 것이다. 액션뿐 아니라 선량했던 특수부대원인 주인공이 무장 강도 집단들의 악행에 무겁고, 무섭게 변화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세영 니킬나게시바트 락샤 라가브주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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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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