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토끼 굴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 굴에 들어갔다가 모험을 시작한 것처럼 사랑에 빠진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난다. 서로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더 다정해지고, 친절해지는 세상. 처음 보는 이들과 같은 이름으로 묶여 거대한 유기체가 되는 세상. 그 굴에는 '팬덤'이란 표지판이 걸려있다.
지난달 30일, 영화관을 찾은 건 취재와 효도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였다. 동행한 할머니는 임영웅이 알싸하게 매운 김치를 좋아하고, 어떤 축구단을 운영하고, 주변 동료들과 어떠한 관계인지 꿰차면서도 "팬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손녀인 내가 보기에는 임영웅을 손자로 생각하는 거 같은데. 할머니와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을 보고 나오는 길, 우리는 파랗게 빛나는 토끼 굴을 만났다. 영화의 숨은 주인공 '영웅시대'에게 가는 길이었다.
20대와 70대, 친구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