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디스테이션
균형 감각도 인상적이다. 단순히 한국 사회를 비판하거나 헬조선과 탈한국을 긍정하며 사회 담론을 일차원적이고 단편적으로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더 넓은 시점에서 헬조선이라는 현상을 조망한다. 어휘 너머에 있는 현실을 포착하려 애쓴다. 일례로 영화는 계나의 선택을 무조건 긍정하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 사례를 거듭 보여준다.
계나의 정착을 도운 일가족은 정작 본인들이 뉴질랜드에 적응하지 못한다. 카메라는 한국만 떠나면 행복할 것 같지만, 마냥 달콤하지는 않은 탈한국의 현실을 놓치지 않는다. 즉, 한국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발버둥 치는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물론 차이는 있다. 서울 시퀀스가 무채색 톤인 반면 뉴질랜드 시퀀스는 더 포근하고, 따뜻하다. 그저 버티기 바쁜 서울과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자기 삶을 돌아볼 여유가 있다. 따라서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이 싫지만, 한국인이라는 소속감을 놓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어디에도 닻을 내리지 못한 소속감이 어떤 의미인지를 반추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한국이 싫어서>는 주인공의 얼굴을 정면으로 자주 담는다. 대화를 나눌 때도, 영상 통화를 할 때도 인물의 표정과 인상을 보여주려 한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막걸리를 같이 마실 관계가 있지만, 타지에서는 아무리 행복해도 무언가를 놓친 듯 보이는 얼굴을 대조하려고 노력한다. 이 지점에서 계나 역의 고아성이 유달리 빛난다. 그녀가 2030 세대 중 누군가의 삶을 자기 얼굴에 모두 녹여낸 것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진짜 탈한국과 행복
이 과정에서 <한국이 싫어서>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특히 한국을 떠났지만, 뉴질랜드에 끝내 정박하지 못한 계나를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묻는다. 다른 한국인들처럼 대학원 학위를 딴 뒤 취업해서 영주권을 얻을 계획인 계나. 영화는 그 선택조차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을 떠나서도 방황을 거듭하는 두 청년을 보다 보면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의 진의가 얼핏 보이기도 한다. '한국이 싫다'는 말은 길이 잘못됐다고 느꼈을 때, 선택한 길 위에서 행복할 수 없다고 직감했을 때, 길을 자유롭게 바꾸지 못하는 '한국이 싫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계나의 대학 동기인 '경윤'(박승현)이 오리지널 캐릭터로 추가된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어찌 보면 그는 가장 한국적인 20대의 전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계나가 공무원 시험 N수생인 경윤과 꿈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가슴에 꽂힌다. 학원가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계나와 경윤. 그는 모두가 불안해하는 이곳에서 벗어나 전망이 탁 트인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번 시험이 마지막 기회라고도 덧붙인다.
경윤은 한 번 선택한 경로가 잘못되었을 때 이를 쉽사리 돌리지 못하는 현실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계나가 뉴질랜드에 정착하는 대신 떠나기로 선택한 것도 꿈속에서나마 그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칫 한없이 비관적으로 흐를 수 있는 현실 인식을 영화적으로나마 치유하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화감 없어 느껴지는 씁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