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부터 유럽과 북미에 사는 교민들이 들썩였다. 한국 최고의 솔로 여가수라 할 수 있는 아이유가 데뷔 후 처음으로 북미, 유럽 대륙까지 18개 도시를 순회하는 월드투어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2008년 데뷔 이후 16년 만에 유럽과 북미에서 처음 열리는 그녀의 공연이 해외에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녀는 알까?
미국에 온 지 올해로 10년 차다. 유학생이던 남편을 따라 온 낯선 땅에서 나는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이곳에서 외국인들과 섞여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곳에선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는, 비주류의 삶이 어떤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타국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한국을 생각하면 늘 아릿하고 애틋한 마음이다.
아이유 향해 가는 길
나는 미국 중부 켄터키주에서도 시골이라 불리는 작은 도시 루이빌에 산다. 차를 타고 10분만 나가도 푸르른 풀밭에서 수많은 소가 풀을 뜯는 곳이다. 밤에 되면 무수한 풀벌레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반딧불이 반짝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한인 마트가 있긴 하지만,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 근처에 있던 가게와 비슷하다. 한국에 한번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큰 도시로 가야만 하는 곳, 그곳이 내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사실 아이유의 미주 투어가 열리는 시카고는 우리 동네처럼 시골이 아닌 미국의 대도시다. 집에서도 차로 6시간 정도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그럼에도 아이유가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들떴다. 몇 달 전부터 콘서트 표를 알아보고 7월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지난 7월 25일, 아침부터 분주히 준비해서 친구와 함께 시카고로 출발했다. 딸 둘에게 엄마의 첫 외박을 이야기하고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꽤 오랜 시간 아이유를 좋아했다. 그녀의 노래는 감미로워 늘 위로가 됐다. 수없이 임용고시에 탈락하며 나 자신이 까맣게 느껴질 때 혼자 도서관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아이유의 노래 <하루 끝>를 듣곤 했다. 간지러운 멜로디는 축 처진 기분에 싱그러움을 얹어주었다. 결혼 후 처음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고 화가 나 집 밖으로 나왔을 때도 신림역 3번 출구 앞 카페에 앉아 노래 <무릎>를 들었다. 그럼, 할머니 무릎을 베고 토닥토닥 위로를 건네는 손길을 느꼈다. 내 슬픔의 끝자락에는 언제나 아이유가 있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그녀의 노래를 드디어 직접 듣게 된 것이다.
아이 없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시카고에서 만난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났다. 친구와 콘서트 가기 전 시간이 남아 한인들이 많이 산다는 시카고 글랜뷰 마을로 갔다. 그곳은 한국 빵집부터 대형마트 그리고 한식당이 즐비하게 들어선 곳이었다. 우리는 매콤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자글자글 뜨거운 열기가 오르는 돌솥비빔밥에 어묵볶음과 배추, 무 등 각종 김치 등으로 속을 채웠다. 늘 노란 머리에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외식했는데 대부분의 테이블에 나와 생김새가 똑같은 검은 머리에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감격스러웠다.
아이유가 전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