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1일, 일본제국의 수도 도쿄 일대에 3차례에 걸쳐 대지진이 발생한다. 지진의 여파로 대화재가 일어난다. 도쿄는 물론 인근 지역은 괴멸적 피해를 겪는다. 화재로 발생한 사망자만 10여 만에 달했다. 천재지변에 이은 사회적 혼란은 공권력이 감당하기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도쿄 시가지의 4할이 초토화되고 대량 이재민이 발생한다. 시신을 수습할 일손도 모자란 판에 구호와 치안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수도 일대는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인다.
기이한 공문이 그 와중에 각지로 전달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약탈과 방화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내무성(행정안전부) 명의의 통문과 언론이 유언비어를 그대로 옮긴 선정적 보도는 불안에 떨던 이들에게 기름을 부었다. 군대와 경찰은 민간인 자경단을 소집했고, 이들은 정부 공문을 기반한 유언비어를 몇 곱절 증폭시켜 나갔다. 공포가 공포를 불러왔다. 조선인은 예비검속의 대상이 되어 강제수용당했다. 식민지인의 설움이다.
구금된 처지가 차라리 나았다. 자경단은 조선인+중국인+오키나와인+일본인까지 싸잡아 폭력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조선인에게 당하기 전에 먼저 해치워야 한다는 공포와 혐오가 무차별 학살로 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훗날 간토(관동)대학살이라 불리는 20세기의 제노사이드다. 오늘날 온라인을 떠도는 밈,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표현이 여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 참극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구체적인 피해 규모나 진상조사와 책임자 규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다큐멘터리 <1923 간토대학살>은 지난해 100주년을 맞이한 학살 참극에 대해 각 잡고 소개하려는 기획이다.
역사의 감춰진 진실과 대면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