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과몰입 인생사2'
SBS '과몰입 인생사2'SBS
 
최근 한국 축구가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싸고 축구 팬들뿐만 아니라 전직 국가대표 선수들조차 협회의 선택을 비판하는 등 이른바 '밀실 인선'에 대한 쓴소리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때마침 지난 25일 방영된 SBS <과몰입 인생사> 시즌2 (이하 '과몰입 인생사2')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준비했다.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주역 거스 히딩크 감독과 역사를 뒤바꿀 만한 선택의 순간을 재조명한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22년 전 뜨거운 열기의 중심에는 한국의 월드컵 첫 승리와 16강, 4강 진출 등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들이 있다. 당시 ​축구의 변방 국가 중 하나에 불과했던 한국 대표팀의 놀라운 선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히딩크 리더십'을 언급했다. 그는 어떻게 한국 팀을 맡아 영화보다 더 짜릿한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준 것이었을까. 

우여곡절 많았던 월드컵 준비... 히딩크의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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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사상 첫 아시아 개최이면서 동시에 최초의 공동 개최로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에서 강호 프랑스에 0대5 대패의 수모를 겪었고, 같은 해 유럽 원정 평가전에선 체코에 역시 0대5 완패라는 치욕적인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선 히딩크 경질 여론이 쏟아졌다.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조차 히딩크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를 정도로 2002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팀 및 히딩크 감독에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대회가 코앞인데 ▲최정예 멤버를 일찌감치 확정 짓지 않고 ▲60여 명에 달하는 후보군을 여전히 테스트하는 감독의 방식·사생활 등은 가뜩이나 그에 대해 곱지 않은 생각을 지닌 언론·기타 축구인들에겐 표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했다. 한때 주장 홍명보를 대표팀 엔트리에서 제외하는가 하면 '꽃미남 스타'였던 안정환 길들이기에 돌입했고, 한국 특유의 유교식 서열 문화를 타파했다. 주전-비주전의 때 이른 확정 대신 치열한 내부 경쟁을 유발해 이를 팀 전력 강화의 원동력으로 마련했다.  

그의 파격적인 선택의 영향은 대회 개막을 한 달여 전 치른 평가전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프랑스 등 유럽 강호와 대등한 경기 내용을 보여주면서 이변을 연출할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을 안겨줬다. 

목표는 오직 월드컵 1승... 이를 뛰어넘은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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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무려 5골을 넣으며 한 수 위의 기량을 보여줬던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끈 히딩크 감독이 후일 한국을 맡게 되리라고 그 누가 상상했을까. 당시 선진 축구를 적극 수용한 해외파 감독 선임 등 일본의 급성장은 공동 개최국 한국에 자극제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 감독이 된 히딩크 감독이 그 당시 뿌리 깊게 남아 있던 관습을 타파하면서 조직력 강화로 한국 축구의 급성장을 이뤄냈다. 이날의 인생텔러로 출연한 '월드컵 4강' 주역 이영표 해설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한국이 한 번이라도 이기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때 히딩크 감독은 '우리 팀이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선수들에게 선언했다."  

​그저 상대가 누가되건 1승이 목표였던 선수들과 달리 히딩크 감독에겐 더욱 원대한 포부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이는 고스란히 4강 진출이라는 놀라운 대선전의 결과물로 이어졌다. 이날 방송을 위해 제작진은 직접 해외로 가서 히딩크 감독과의 인터뷰도 진행하는 등 AI 영상물로 대체하던 앞선 방영분들과는 사뭇 다른 탄탄한 준비로 차별화를 도모해 눈길을 끌었다.

성공적인 그때의 파격 선택, 아쉬운 2024년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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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위원은 축구에 있어 감독의 중요성을 묻는 MC들에게 "경기장 벤치에 감독이 누가 앉아 있느냐에 따라서 경기 결과가 달라진다. 그 정도로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평소의 소신을 피력했다.  

최근 논란이 된 외국인 감독 대신 국내파 감독(홍명보) 선임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도 "숫자로 보면 될 것 같다. 국내파 감독이 천 명이면 천 명 중에 골라야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는 순간 수십만 명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감독이 낫다고 생각이 되면 한국 감독을 뽑으면 된다. 다만 세계 축구 트렌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일본이라는 공동 개최국이면서 라이벌 국가의 행보에 자극받은 결과였지만,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의 선임을 비롯해 그가 내린 결정은 모두 대성공이었다.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시각에서 축구를 바라보고 대표팀을 꾸려나가던 시절임을 고려하면 분명 파격적인 선임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중도 해임의 위기도 직면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이 또한 슬기롭게 극복했다.  

20여 년 전의 파격 선택과 달리, 2024년 축구협회의 이해 못할 행보는 팬들 입장에선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면서 향후 열리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려줄 인사의 선임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 속에 퇴보된 선택의 결과가 나왔다. 

단순히 22년 전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뒷걸음질 행보로 비칠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을 <과몰입 인생사2>는 그때의 명장, 히딩크 감독과 그를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적절히 그려냈다.
덧붙이는 글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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