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진주"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씨네소파
<진주의 진주>에 담긴 내용은 지금 대한민국 전국 여기저기 벌어지는 갈등의 복사판이다. 독립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다루는 소재이기에 일단 내용 자체가 특별하진 않다. 대개 독립 다큐멘터리에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카메라라는 오랜 전통에 따라 하루아침에 내쫓기게 되는 세입자나 소상공인을 조명하며, 부를 향한 욕망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는 행태를 비판하는 시각을 견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혹은 좀 더 거시적인 시선에서 관찰자의 태도로 도시공간의 급속한 변화와 지역의 오랜 기억이 스며든 공간들이 특색 없이 획일화되는 스산한 광경을 기록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극영화의 경우 좀 더 관조적으로, 그리고 향수 어린 시선으로 추억이 깃든 장소의 소멸을 안타깝게 응시하곤 한다.
본 작품 역시 그런 태도의 연장선에 서 있다. 하지만 상당한 변주가 엿보이는 지점이 흥미롭다. 우선 주인공 진주는 자기만의 욕망으로 상황에 뛰어든다. 대개 중립자이거나 (경중은 있지만) 피해자 혹은 희생자의 포지션을 취하는 여타 경향의 주인공에 비해 속셈이 명확하게 관객에게 드러나는 캐릭터다. 진주는 엉겁결에 내려온 진주라는 지역에 대해서도, 삼각지 다방의 연원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가 이 동네에 대해 아는 건 기껏해야 촉석루에서 논개가 왜장을 안고 남강으로 투신했다는 정도가 거의 전부다. 지역 예술인들이 거세게 분노하거나 소리 없는 눈물을 삭이는 것에 비교하면 주인공은 그저 자신의 실용이 급선무다. 그래서 영화 중반까지 진주는 자기만의 계산을 끊임없이 고려하고 유불리를 따진다. '속물'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아마 <진주의 진주>를 보게 될 관객은 자신이 현실에서 가진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차별화된 감상을 지닌 채 극장 문을 나서게 될 테다. 본인이 자영업자로 하루하루 고비를 간신히 넘기는 상황이라면 이 영화 속 주인공은 물론, 삼각지 다방의 소파 여기저기를 점령한 채 주인의 참다못해 내뱉는 항변처럼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종일 죽치고 앉아서 담배까지 퍽퍽 피워대며 노닥거리는' 지역의 주머니 얄팍한 예술인들이 호환 마마와 다르지 않아 보일 지경일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유서 깊은 문화공간을 지켜내자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의 주장은 지역 사회 내에서 유의미한 메아리를 불러오지 못한다. 물론 급작스럽게 터진 매각과 철거 소식이라지만 경영이 어렵다는 징후는 오래전부터 단골이라면 간파했을 텐데, 딱히 그동안 삼각지 다방을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액션은 없어 보인다. 가게 바깥에 깜박거리는 낡은 전광판에 표기된 대로 옛날에는 장사도 제법 잘 되어 24시간 내내 운영했겠지만, 지금은 단골(이라고 주장하지만, 가게 주인 시선으로는 진상과 경계선에 있는) 몇몇만 드나들 뿐이니 말이다.
영화 중후반에 진주와 준용을 비롯한 일당은 지역문화재단과 시청 등 관공서를 찾아가 역사가 깃든 공간의 철거를 막아야 한다며 호소하지만, 문화재단 이사의 일갈처럼 50년 넘는 노포는 지역 사회 곳곳에 널려 있고, 공공장소가 아닌 민간 소유의 가게를 임의로 관청이 나서 철거를 저지하기란 실정법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술인들의 감성 가득한 청원은 번번이 외면당하고 만다. 실제로 적법한 소유주가 매각과 철거를 결정했고, 공공기관이 임의로 개입할 틈새가 딱히 없는 게 영화 속 현실이 맞다. 예술인들이 이것저것 궁리하지만 타이밍도 안 맞고 설득력도 약해 보인다. 조금이라도 설득력을 높이려 시도하는 게 통상적인 연출의 고민일 텐데, <진주의 진주> 속 재개발 저지 운동은 마치 고의로 현실의 냉혹함을 적당히 덜어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구석 때문에 2020년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의 첨예한 갈등을 재현한다기보다는, <진주의 진주>는 마치 훨씬 빈한하긴 했으되 '낭만'은 조금 더 운치가 있었던 이전 세대의 정서와 맞닿아 보인다. 마치 2000년대 초반에 방영된 EBS의 현대사 드라마 <명동백작> 속 당대 명동을 주름잡던 명물 문화인들과 그들의 아지트 노릇을 하던 공간들을 보는 기분이다.
해당 드라마 속에서 1950-60년대 명동의 문화 명소였던 곳들, '모나리자' 다방과 '포엠' 위스키 바, '동방쌀롱' 같은 곳들이 몇 해 못 버티고 문을 닫고 줄행랑을 치던 장면들과 이 영화 속 삼각지 다방 단골 지역 예술인들의 풍경은 시공간을 초월해 복사한 듯 판박이 형상이다. 열에 아홉은 커피 한 잔만 달랑 마시고, 제때 값을 치르는 이는 거의 없는 데다 툭하면 외상을 외치는 데다, 온갖 기행으로 새로운 손님 유입도 가로막는 행태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마 감독이 의도하는 정서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복고풍 정서이기 때문일 테다.
'노스텔지어'의 기운과 향수가 가득한 영화 속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