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정민 배출한 '학전' 김민기 영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한 마디 김민기 선생이 투병 끝에 향년 73세로 21일 영면했습니다. 그는 ‘아침이슬’, ‘상록수’ 등의 운동 가요를 작곡했습니다.
박정희 유신독재를 향한 민중의 반감이 거세지던 1970년대 김민기의 노래는 대중의 마음에 녹아들었습니다.
1991년에는 대학로 학전 소극장을 열었고 1994년에는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학전은 배우 설경구, 황정민, 이정은, 안내상, 장현성 등의 후배 예술인을 대거 배출했습니다.
그의 타계 소식에 각계각층에서는 애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지혜 배우는 "나의 영원한 뒷 것. 나의 아저씨. 편히 쉬세요. 고마웠어요"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아침이슬의 노랫말은 이 엄혹한 현실 속에 모든 이의 가슴 속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일깨우고 있다”고 애도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민기 님은 엄혹한 시대에 끝없는 고초 속에서도 민주주의의 열망과 함께 영원한 청년 정신을 심어줬던 분”이라고 그를 기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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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하훈 / 영상 이주영 ⓒ 오마이스타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1970년대 초반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된 데는 박정희 독재 치하의 검열 당국이 이 가사를 불순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를 옥죄려 한 검열기관의 머릿속에서 '묘지 위에 떠 오르는 붉은 태양'에 대한 불순한 상상력이 작동했기 때문일 테다.
이후 김민기라는 이름은 1970년대 금지곡의 대명사였다. 군사독재 정권은 그의 노래가 불리는 것을 싫어해 강제적으로 막았으나 그럴수록 구전 가요처럼 알음알음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시위현장에서 운동권 노래를 모르던 일반 시민도 누구나 따라부를 수 있던 노래가 '아침이슬'이었을 만큼, 금지곡은 굴레를 이겨내고 대중적인 노래가 돼 있었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거리에서 끝 소절을 부를 때 모두가 애타는 마음으로 목놓아 부르던 기억은 중년 세대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아침이슬'이 금지곡에서 풀려 방송이나 음반을 통해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후였다.
노래로 시대의 아픔 대변한만큼 고난의 삶 겪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