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허구는 인생에 형식을 부여한다
<퍼펙트 데이즈>는 시부야구에 있는 17개의 공공화장실을 개축하고, 젠더를 불문하고 누구나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전후 일본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담은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팬을 자처하는 빔 벤더스의 영향도 짙게 배어있다. 유유자적 보이는 히라야마의 모습에 일본적 미니멀리즘에 대한 지나친 미화라는 비판도 보인다.
일상의 요동 없어 보이는 히라야마지만 그는 자전거 하나도 열심히 타는 사람이다. 평지임에도 언덕을 올라가듯 온몸을 사용해서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집 안 청소라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점프슈트를 입고 쪼그려 앉아 바닥을 닦고 있는 게 보통 힘이 드는 일이 아니라는 걸. 삶에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다. 타카시가 갑자기 퇴사하고 그의 몫까지 일하느라 늦은 밤 퇴근했을 때 그는 사무실에 여러 차례 전화하며 강하게 충원을 요구했다. 목욕은커녕 책 한 줄도 읽지 못하고 바로 쓰러져 잠들기도 한다. 히라야마가 태평하게 소일거리로 정신 수양을 하는 게 아니라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지탱되는 노동으로 삶의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걸 빔 벤더스는 잊지 않는다.
따져보면 똑같은 하루는 없다. 어제와 같은 조명, 온도, 습도가 같은 오늘도 내일도 없다. 오프닝의 루틴을 선보인 완벽한 하루는 끝내 한 번도 재현되지 않는다. 완벽한 하루는 흘러간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걸까. 영화의 마지막. 출근길에 나선 히라야마는 평소처럼 테이프를 틀고 스카이트리를 바라본다. 도로를 채우기 시작한 자동차들. 아직 형광등이 켜지지 않은 건물 사이로 동이 터오고 해를 마주한 히라야마는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카세트 데크를 통해서는 니나 시몬(Nina Simone)의 'Feeling Good'이 흐른다 .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I'm feeling good.
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 새로운 삶이야 내겐.
극작가 장 아누이는 "허구는 인생에 형식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기억은 온전히, 완벽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의 파편으로 삶을 추억한다면, 어떤 장면을 뽑아내 각자의 삶을 영화로 만들지는 결국 우리의 손에 달렸다. 장면은 많을수록 좋다. 우리에게 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이 필요한 이유. 영화의 제목은 단수(Perfect Day)가 아니라 복수(Perfect Days)인 이유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