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이지만 <치킨랩소디>를 시청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달려가 치킨 한 마리를 사왔다. 브랜드도 없는, 동네 입구 치킨집에 파는 1만2천 원짜리 치킨. 그런데 <치킨 랩소디>의 프리젠터 백종원씨 말처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이 갓 튀긴 치킨이라더니, 갓 튀겨 가져온 치킨의 맛은 그 어떤 치킨보다 맛있었다. 어쩌면 <치킨 랩소디> 속 산해진미 치킨들이 내 미각을 자극했던 것일까.

KBS와 넷플릭스에 동시에 <치킨 랩소디>가 공개됐다. '치킨' 덕분일까, 공개된 다큐는 넷플릭스 시청률 순위까지 넘나들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1부 <오늘도 치맥하셨습니까?>와 2부 <닭 한 마리의 위로>로 구성된 다큐는 그에 앞서 방영된 삼겹살, 냉면, 짜장면 랩소디의 맥을 이은 프로그램이다. 선정된 소재에서도 보여지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음식들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역사와 내공을 파헤쳐 간다. 
 
 치킨랩소디
치킨랩소디넷플릭스
 
닭이 치킨이 되기까지 

요리사이자 사업가 이전에 음식에 대한 '맛잘알'로 일가견이 있는 백종원씨, 개그맨 김준현씨, 그리고 <대한민국 치킨전>을 통해 어떻게 닭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게 되었는가를 알려 준 정은정씨, 대한민국 음식 인문학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주영하 교수 등이 2회차 다큐에서 저마다의 상식을 뽐냈다. 

한강변이든, 해변이든 대한민국 어디서든 치킨을 시키면 20분 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치킨 브랜드만 683개. 2024년 약 8조 원 규모의 시장이 된 치킨.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지리적 공간에서의 치열한 치킨 전쟁이 치킨을 전 세계인의 k푸드로 거듭나게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치킨을 먹기 시작했을까? 

어릴 적 동네 시장에 가는 게 참 싫었다. 시장에 가면 닭을 파는 곳이 있었고, 그곳에는 닭들이 실제로 푸드덕거리며 깃털을 날리고 있었다. 닭을 주문하면 주인은 철장 안에서 손님이 고른 닭 한 마리를 꺼내 그 앞에 있는 솥에 담궈 닭을 죽인 후 털을 뽑아 튀겨 주었다. 그 날 것의 살육 현장이 보여주는 적나라함이 어린 나에게는 몹시도 충격적이었다. 

197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조차도 닭이 치킨으로 '승급'된 시절이란다. 닭이래봐야, 백숙이 전부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한 여름 '복날'이면 삼계탕 집이 난리가 나듯, 복날이나 돼야 닭을 잡아 나누어 먹던 시절도 있었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준다던 말의 의미도 짚어봐야 한다. 예전에 닭은 '고기'가 아니라, 주로 '달걀'을 생산하던 대상인지라, 달걀을 낳는 씨암탉을 잡는다는 건, 바로 매일 먹을 수 있는 '달걀'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그만큼 사위에게 소중한 음식을 대접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이처럼 달걀의 주생산자였던 닭이 흔해지는 계기를 만든 건 바로 토종닭이 아닌 오늘날 우리가 주로 소비하는 육계 종자를 수입하면서 부터다. 1969년 전국 규모로 국민 영양 실태를 조사하고,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가 중요하다는 결과에 따라 유계를 수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 돼지보다 성장 속도가 빠른 닭은 1960년 약 80만 수이던 것이 1970년 약 2400만 수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만큼 닭은 싼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자리 잡게 됐다.
 
 치킨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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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닭이 치킨이 되기 위해서는 또 한 단계가 필요했다. 다큐는 오늘날 치킨의 출발점을 바삭한 껍질을 가진 전기구이 통닭에서 찾는다. 그리고 1971년 국내산 식용유가 출시되며 드디어 닭을 튀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 닭튀김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1977년 신세계 백화점 지하에 '림스 치킨'이라는 미국식 닭튀김 전문점이 처음 들어왔다. 이어 1984년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한국에 상륙했고, 1989년 맥O칸 치킨이 국내 프랜차이즈 치킨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전국방방곡곡을 넘어 k 푸드가 된 닭

그런데 치킨이라고 다같은 치킨이 아니다. 마치 역사책에서 나온 민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로 시대를 구분하듯 치킨에도 종류가 있다. 생닭을 튀기던 것에서, 가루 반죽을 입히고, 거기에 물반죽을 하면 빵굽는 냄새같은 풍미를 더하게 된다. 

물반죽하는 통닭은 1980년대에 시장에서 시작되어 일반적으로 시장 통닭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무늬가 없다 하여 민무늬 치킨이라고도 한다. 90년대 초반 물결무늬라 칭해지는 크리스피 치킨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양념 치킨은 어떤가? 처음 양념 치킨을 만든 윤종계씨. 튀긴 닭을 먹던 사람들이 닭이 식자 맛이 없다며 남기고 가는 것을 보고, 거기에 양념을 입혀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양념은 대구 등 각 지역의 특색에 따라, 혹은 치킨 브랜드만의 특별한 레시피에 따라 다양한 양념 치킨을 탄생시켰다. 현재 이 양념 치킨이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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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는 화려하고도 치열한 한국 닭 음식의 세계가 열린다. 2부의 묘미는 닭으로 하는 전국일주다. 대구 닭똥집 골목, 안동 찜닭 골목, 춘천 닭갈비 등으로 이어진다. 지역마다 OO 골목을 만드는 것 역시 대한민국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임을 다큐는 증명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오랜 역사를 가진 줄 알았던 안동 찜닭이 1980년대 양념치킨에 대응하기 위해 탄생한 음식이었다니! 

1960년대 온국민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권장됐다던 닭이 K푸드의 대표음식으로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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