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랜드> 스틸컷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세계가 가짜가 되는 순간, 1초
<원더랜드>는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공유라는 화려한 출연진으로 화제가 됐다.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중성을 갖춘 CF 스타들이기도 하다. 흠잡을 데 없는 선남선녀인 이들은 원더랜드라는 서비스의 광고모델처럼 행동한다. 로맨틱코미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아파트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걱정거리 하나 없는 가족 같기도 하다. 상실의 고통 없이 현재의 충만함으로 채색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김태용 감독의 영화가 맞는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과시하듯 초반부를 장식한다.
가상현실의 바이리는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이자, 딸의 장래 희망인 고고학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생전 그녀는 바쁜 펀드매니저 생활 때문에 딸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많았다. 미안함을 속죄라도 하듯이 바이리는 끊임없이 딸과 연락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원더랜드 속 태주는 정인의 출근 루틴을 꿰고,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주고, 약병이 어느 서랍에 들었는지까지 안다. 침대에 누워있던 순간은 당연하고, 뇌 손상으로 감정과 감각이 불안정한 현실의 태주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든든한 존재다.
그러나 가상의 삶이 현실보다 낫다면 굳이 현실이 필요할까. 바이리의 엄마는 고통스럽다. 바이리가 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점점 커지고, 가상현실이 점차 현실을 대체하는 상황이 되자 '너는 내 딸이 아니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서비스를 해지한 뒤 손녀와 함께 중국으로 떠나려 한다. 혼란스러운 건 정인도 마찬가지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태주에게 급기야 가짜 태주를 보여주며 이별을 고한다. 사랑하는 이의 온기, 적당한 무게감, 살갗의 촉감을 느낄 수 없는 상실감은 완벽한 이상향이 구현된 세계가 가짜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1초도 안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