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N <세자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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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 의료인의 상당수는 무녀이거나 아니면 관노비였다. 무녀를 제외하면, 책으로 의술을 익힌 여성들은 주로 관노비들이었다.
음력으로 태종 18년 6월 21일자(양력 1418.7.24) <태종실록>에 따르면, 교육과 외교 등을 관장하는 예조는 의녀 증원을 태종 이방원에게 건의하면서 "청컨대, 각 관청의 비자(婢子) 중에서 나이 13세 이하인 사람 열 명을 더 뽑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요청했다. 13세 이하의 여성 공노비(관노비) 중에서 10명을 증원하자고 주청한 것이다. 조선시대 의녀 충원의 일반적인 방식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공노비 중에서 의녀를 선발한 것은 국가가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여성 인력 자원이 주로 그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재정적 이유도 작용했다. 공노비는 국가와의 관계에서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됐기 때문에 국가는 이들을 원칙상 무보수로 활용했다. 무보수 'AI 의료인'을 공공의료에 투입한 셈이다. 그래서 이들은 비번 날에 생업을 하든가, 아니면 수많은 관청 아전들이 그랬던 것처럼 직무를 이용해 부정한 방식으로 돈을 벌든가 해야 했다.
국가에 얽매인 공노비들이 공공기관 의녀로 충원되다 보니, 이런 의녀들은 오로지 의술에만 전념하기 힘들었다. 관청의 필요에 따라 이런저런 업무에 동원되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서 최명윤이 꿈꾸는 개원의로 나서지 않는 한, 이들의 신경은 이래저래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경국대전>이 시행된 1485년 이후에 나온 보충적 법전들 중 하나가 <대전후속록>이다. 이 법전의 예전(禮典) 편에 따르면, 의녀들은 혼인 예물을 조사하는 임무도 맡았다. 혼인 절차가 진행되는 가문을 방문해 예물 교환에 위법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일도 맡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