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예능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의 한 장면.
JTBC
이런 장면들, 엄마의 미온적 표정과 반응에 효리가 보이는 실망 내지 삐침이 조금씩 표출될 때, 프로그램을 같이 보던 딸애도 효리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효리는 엄마에게 이벤트 성 사진을 찍자거나 장난감 총으로 인형을 맞추는 게임을 제안하며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는데, 효리의 노력에 비해 엄마가 뚱하다는 타박이었다.
나는 불끈해 "저게 저 나이 할머니가 하고 싶겠냐"고 반박했다. 후후후 우리 모녀의 간극이 효리 모녀에게 있었다. 여든의 주름지고 구부정한 노모가 흰 카라가 달린 교복을 뻘쭘하게 입고 들이댄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는 것이 무엇이 즐겁겠는가. 효리가 내내 "못 해본 거 다 해봐"라며 노모에게 '도전'을 추동했지만, 엄마는 그 의미 없는 '도전'을 왜 해야 하는지 마뜩잖다. 교복을 입어본다고 소망했으나 이루지 못한 학업에 대한 박탈감이 해소되겠는가.
나는 본래도 사진 찍거나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요즘 들어 더 싫다. 희끗해진 머리나 주름 깊어진 얼굴을 보고 있자면 이물스럽다. 누군가는 이런 불편감을 나이 듦을 사랑하지 못하는 비주체적 사고라 타박하겠지만 할 수 없다. 싫은 건 싫은 거다. 효리 엄마에게 사진 찍고 찍히는 일도 그럴 수 있다. 효리는 20년 넘게 연예인 생활을 했고, 지금은 전 국민적 사랑을 받는 인플루언서로 사진 찍거나 찍히는 게 일상이겠지만, 엄마에겐 고역일 수 있다.
이처럼 30년이 넘는 세대(디지털) 격차와 독립과 결혼으로 엄마 곁을 떠난 시간이 엄마와 같이 지낸 시간보다 길어진다는 것은 서로를 잘 모르게 된다는 의미다. 나만 해도 옥수수를 좋아하던 엄마에게 찐 옥수수를 사다 드렸다가, 틀니를 해 넣은 뒤로 옥수수가 짤각거려 안 먹는다며 그것도 몰랐냐는 지청구를 들은 적이 있다. 자주 들여다보고 돌본다고 해도 이런 일이 생긴다. 사람은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단연 몸이다.
효리가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효리의 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엄마의 몸은 급격한 노화를 겪으며 완전히 다른 몸이 되었을 것이다. 뼈와 피부의 구부러짐과 뒤틀림으로 몸의 형태가 변한 것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쓸모를 다한 관절과 근육은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준다. 늙은 몸은 비틀리고 줄어들고 느려지고, 어느새 취해지지 않는 자세가 많아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몸과 마음은 분리되지 않는다. 삐걱대는 몸만큼이나 마음도 비활성화될 때가 잦다. 이는 아직 젊은 효리가 엄마와 같은 늙은 몸이 되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는 진실이다.
처음으로 떠난 여행이 효리의 연예인다운 기획대로 신바람 나게 진척되지 않는다면, 효리가 변한 엄마의 몸과 마음을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또한 여행이란 즐겨본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고도의 문화생활이다. 농번기에 김매야 할 작물을 밭에 널브러뜨리고 있는 엄마에게 여행은 내일 일이 두 배로 가중되는 초과노동을 의미한다. 일회성 이벤트인 장기 여행보다 나들이 삼아 짧은 반나절 여행을 종종 하는 것이 노인에게 반가우며, 반짝 해프닝보다 일상을 나누는 것이 더 소중할 수 있다.
딸의 입장 그리고 엄마의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