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지전> 스틸 이미지
㈜쇼박스
화면 속 병사와 장교는 계급 가릴 것 없이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포격으로 인해 다리가 잘리고, 내장이 튀어나온 채로 엄마를 부르짖고, 잘린 팔을 찾아 헤맸다. 의무관은 수통에서 피를 쏟았고, 기껏 치료한 부상병은 바로 총에 맞아 죽었다. '저게 전쟁이구나', '총을 쏘고, 총에 맞는다는 건 저런 거구나' 169분 동안 나는 비로소 군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훈련소에 들어오고, 군복과 생활복을 입고, 머리를 한 번 더 밀고, 집에 소포를 부칠 때보다도 더.
2019년 6월 5일, 전역날이 찾아올 때까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군 생활을 따라다녔다. 살면서 처음 총성을 듣고 총의 반동을 느꼈을 때, GOP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성 GP에 투입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DMZ를 뒤덮은 산불을 피해 GP 철수 작전을 펼칠 때, 북한이 GP를 폭파할 때, 바로 옆 기지에서 북한 병사 귀순을 간신히 포착했을 때.
매 순간 무서웠다. 사건사고가 많기로 악명 높았던 22사단이라 더더욱. 지금이야 웃으며 회상하는 추억 조각 중 하나지만, 그때는 오마하 해변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들처럼 될까봐 두려웠다. 불과 5~600m 앞에 위치한 북한 GP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빨간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부모님 전화번호를 누를 때 나는 항상 겁쟁이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의 패닉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지만 내 안의 패닉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막 시작되던 2020년 2월, < 1917 >을 보면서 내 마음속 판은 다시 소리 질렀다.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전투 광경을 보면서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던 때로, 일산에서 고성으로 시간여행을 한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아주 좋아한다. 주저 없이 인생 영화 중 하나로 뽑는다. 이 작품은 겁쟁이 훈련병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두려움, 군인이라는 신분의 무게가 온몸을 사로잡는 와중에도.
미 행정부는 4형제 중 유일하게 생존한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구출부대를 보냈다.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전쟁터지만, 영화 속 군대와 군인은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집으로, 가족 품으로 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전역일이 600도 더 남은 훈련병에게는 그조차도 자그마한 위안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내심 우리 군대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는 못 미치더라도, 영화 <고지전>은 아닐 거라는 기대 섞인 감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병사 한 명 한 명을 소모품으로 내던져 버린 70여 년 전 군대로부터 조금은 변했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