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늘부터 댄싱퀸> 스틸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하지만 묘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일정하게 존재한다. (물론 필자의 주관적 해석이지만) E.D.윈을 정점으로 하는 10대들이 열광하는 힙합 커뮤니티에 대해 춤이 주는 해방감과 또래 문화에 대한 중립적 태도가 확인되지만, 미나를 사이에 놓고 춤은 힙합 댄스가 전부가 아니라고 웅변하는 것처럼 할머니가 교습하는 클래식 발레와 전통 민속춤을 대비시키는 묘사에서 그저 청춘 로맨스를 넘어서는 어떤 '입장'이 느껴진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여기에 기름을 붓는 건 제작진의 선곡이다. 영화 속에서 미나가 결국 귀의하게 되는 춤의 배경음악이자 대회에서 사용하는 곡,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의 팝 버전인 잉거 리스의 '내 인생에서'는 물론, 영화의 주요 전환국면마다 버전을 달리하며 흘러나오는 스칸디나비아 음악의 상징, 그룹 ABBA의 대표곡 '댄싱 퀸'의 강조점이 확연하게 다가온다.
적도에서 극지방까지, 대륙과 대양을 초월해 10대 하위문화의 상징처럼 힙합이 받아들여지는 요즘 시점에서 왜 하필 ABBA의 '댄싱 퀸'일까? 옆 나라 스웨덴 그룹이긴 하지만 ABBA의 음악적 평가 면에서 이는 그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워낙 유명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심증이다. ABBA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20세기 중반 이후 팝 아티스트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국-흑인음악의 영향 바깥에 있는 존재다. 전통 북유럽 민요에 기반을 둔 이들의 음악성은 지극히 특수한 예외에 속하지만 그야말로 북유럽 지역에선 국경을 초월해 하나의 지역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중문화 유산에 속하기에, 유독 E.D.윈이 (미나에겐 묻지도 않고 결정해놓은) 국적불명의 힙합 비트와 대척점에 선다는 느낌이 짙은데 이런 배치가 묘한 상상과 차별화를 유발하는 촉매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국수적으로 해석하면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 혹은 요즘에는 청소년들이 아름다운 동요나 포크송 대신에 국적 불명의 시끄럽고 요란법석인 알아듣기도 힘든 음악을 좋아한다는 푸념에 불과할 테지만, 사실 근래 외래어 범벅에다 팬덤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면 소화하기 힘든 내용으로 가득 찬 채 '그들만의 리그'처럼 되어가는 하위문화 경향에 대한 '의견'이나 '입장'으로 의도적으로 (그 동네에선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ABBA가 배치된 것 아닐까 상상해본다. 청소년들에게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존중이 당연히 필요하지만, 소통과 공감은 세대를 초월해 작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발로라면 더없이 훌륭한 선곡일 테다.
거기에 마치 할머니에게 바치는 송가처럼 현란한 전자 비트의 경쟁 곡들에 개의치 않고 미나가 선곡한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로 유명한 리듬의 그 곡 사용은 영화 후반부에 갈등을 딛고 화해와 공감에 이르게 된 미나 가족과 절친이자 속마음을 숨기고 있던 단짝 마르쿠스와의 관계 회복을 상징하는 기제로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청소년 드라마이지만 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에 절대 춤과 음악에 대해 허술하게 대하지 않아서 눈요기만으로도 상당한 재미를 선사해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댄스 경연대회 결과도 억지 결말이 아니라 조화로운 마무리로 기대를 충족해준다. 하지만 제작진의 의도는 앞선 ABBA 음악 선곡과 더불어 명확해 보인다. 부모세대가 이러니저러니 할 건 아니지만 그저 접근하지 않고 방치하는 건 답이 아니며 서로 공감대를 나눌 무엇인가가 필요하단 결론이다. 제법 흥미로운 논쟁점을 제시하는 영화다.
그런 행간의 의미심장함을 놓치지 않아 주시길 기대하지만, 본질적으로 <오늘부터 댄싱퀸>은 12살 소녀와 소년들의 성장 드라마이자 순정 로맨스라는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기본기에 꽤나 탁월하기 때문에 흐뭇하게 지켜보다 짬이 생기면 가족간의 소통이나 북유럽의 교육과 문화 현실에 대해서도 돌아본다면 더 없이 효율적으로 이 영화를 즐길 수 있겠다. 무엇보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자녀를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당위+염려된다면 소통의 통로부터 모색하자는 해법이 절묘하게 궁합을 이룬 청소년 성장물은 요즘 귀하니 말이다. 참 오랜만에 상투적이지 않은 온 가족 관람 추천영화가 우리에게 도착했다.
<작품정보> |
오늘부터 댄싱퀸 Dancing Queen
2024│노르웨이│드라마/가족
2024.05.29. 개봉(롯데시네마 단독 개봉)│92분│전체관람가
감독 오로라 고세
각본 실리에 홀테
주연 리브 엘비라 쉬퍼순 라르손(미나 역), 스툴라 하르비츠(마르쿠스 역),
빌야르 크누센 브야달(E.D.윈 역)
출연 일바 뢰스텐-하가(벨라 역), 안네 마리트 야콥센(미나 할머니 역),
안드레아 브라인 호빅(미나 엄마 역), 안데스 바스모(미나 아빠 역),
센지스 알(션 역)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공/공동배급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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