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방>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자신의 노력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들이 눈앞을 가로막을 때, 비슷한 환경에 놓인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하필 꼭 자신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종종 억울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런 상황이나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제대로 되지 못한 어리고 연약한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지만, 받아들이거나 인정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렇게 되는 순간, 혼자 도태되어 무리로부터 멀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덮쳐온다.
영화 <내 방>의 시선 한가운데 놓인 지안(김지원 분)이 그렇다. 좁은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그녀의 등 뒤로 두 동생 지유(이지현 분)와 지호(김예성 분)의 고성이 멈추지 않는다. 지금부터 공부를 할 거라고 선언만 하면 가족 모두가 숨을 죽이고 방해하지 않는다는, 더 간단히 문만 잠그면 된다는 친구들의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현실이다. 이 작은 방을 여동생인 지유와 함께 써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공부를 위한 아늑한 환경의 조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지금 지안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02.
청소년 시기의 인물을 들여다보는 영화에서 학교와 가정을 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며,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장소여서다. 인물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밀어 넣지 않는 한, 다른 대부분의 경우에 두 공간은 서로 상반된 자리에서 대립하는 의미로 이용되곤 한다. 동급생의 폭력에 시달리게 되는 학교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안온함을 지닌 가정, 혹은 학대로 물든 가정과 피난처로서 기능하는 학교와 같은 식이다.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두 공간 사이에서 인물은 입체화가 가능해지고, 화해와 성장의 서사는 움틀 여지가 생긴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지안의 시간은 학교와 가정 두 공간으로 분할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립하는 장소는 아니다.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해도 양쪽 모두의 공간에서 지안은 청소년기를 보내는 평범한 학생의 모습을 한다. 이 작품의 한세하 감독이 공간의 의미를 활용하는 방식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래서다. 두 공간을 인물의 처지나 감정을 극단으로 몰고 갈 장치로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의 내면의 틈에서 자라나고 있던 불안과 서운함을 증폭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공간의 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인물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두 공간의 미묘한 충돌을 통해 잠재된 감정을 꺼내고자 한다.
이는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인물의 예민한 감수성과 순수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도 기능한다. 극의 측면에서는 러닝타임을 통해 다루어야 할 중요한 요소 하나를 발굴하는 것이고, 관객에게는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른이 되고 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결코 용서가 되지 않던 때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구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