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라이언스게이트
모든 단점 잊게 만들어 준 '마지막 한 방'
영화는 에밀리와 앤드류가 나눈 대담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전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앤드류 왕자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일관된 태도를 보였지만, 그의 지나치게 어색한 태도와 명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 에밀리의 질문으로 인해 대중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사실 영화가 다룬 이 사건은 실제로 벌어진 지 5년도 채 지나지 않았고,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종종 회자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영화화가 조금 성급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특종의 탄생>은 굳이 이 사건을 극화하기로 한 이유를 작중의 대사로 분명하게 드러낸다.
"시간, 항상 시간이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거든."
영화 내에서 주된 쟁점이 되는 것 역시, 2006년 유죄 판결을 받은 아동성범죄자 제프리 앱스타인과 앤드류 왕자의 우정이 어째서 2010년까지 지속되었는지다. 이미 형을 복역하고 나온 앱스타인에게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이 없었고, 이 빈틈을 이용해 앤드류 왕자와 앱스타인은 끔찍한 범죄를 계속해서 저질러 왔던 것이다. '시간의 힘'을 믿으면서. <특종의 탄생> 제작진이 영화화를 결심한 이유에도 영화사에 남을 걸작을 만들겠다는 마음보다는, 대중에게서 이 사건이 잊히지 않도록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도가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덧붙여, <특종의 탄생>은 해당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또 하나의 올바른 선택을 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앱스타인-앤드류 논란이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때문에 일어났으니, 사건의 '끔찍함'을 묘사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선정적인 장면을 넣을 수도 있었다.
파멜라 앤더슨의 섹스테이프 유출 사건을 지나치게 극적으로 다루어 비판받은 드라마 <팸 & 토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피해자를 위한다고 만든 극들이 오히려 그들의 마음에 더 상처를 내는 비극은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특종의 탄생>은 피해자가 당한 범죄의 끔찍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버스 앞자리에서 장난치는 10대 소년·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심각성을 관객이 체감하게 했다. 노골적이지 않은 직시, 그리고 상식에 기반한 정론이 바로 <특종의 탄생>이 지닌 무기였다.
이처럼, <특종의 탄생>은 인물 배치나 전개 속도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존재했지만, 영화를 만든 의의까지 퇴색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진중하게 다루었으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 문제적으로 느껴질 요소를 포함하지도 않았다. 영화 속 BBC의 언론인들처럼 정도(正道)를 걸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과 배우들의 열연은, 그야말로 '한 번 봐서 나쁘지 않을' 넷플릭스 영화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특종의 탄생>이 가진 '마지막 한 방'은 사건을 다룬 진중한 자세 그 자체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보 과잉 시대에 깊이 있는 저널리즘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이러한 실화 기반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되새겨 주는 샘의 대사를 인용해 본다.
"텔레비전 방송 1시간이면 모든 걸 바꿀 수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