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은 언제나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위기라는 단어를 10번 말하면 그때는 정말 위기가 될 것이다. 너무 빨리 위기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미래에 뭘 할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라."
 
4월 17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240회에서는 거스 히딩크 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출연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응원했다. 또 히딩크와 친분이 있는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 감독도 출연해 히딩크와 티키타카를 자랑했다. 

히딩크(77)와 츠베덴(63)은 각각 축구와 음악에 있어서 네덜란드가 배출한 세계적인 거장이자,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인연이 깊은 네덜란드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와 대한민국, 호주, 러시아 국가대표팀, 레알 마드리드와 첼시, PSV 아인트호번 등 여러 축구 명문클럽과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을 역임한 세계적인 명장이다. 츠베덴 감독은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세계 3대 필하모니로 꼽히는 뉴욕 필하모니 등 다수의 음악-예술감독을 역임할만큼 현존하는 최고의 마에스트로로 통한다.
 
두 거장은 각기 다른 분야와 14살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적으로 절친한 관계로 유명하다. 히딩크는 츠베덴과의 인연으로 최근 서울시향 홍보대사에 위촉되기도 했으며 아내 엘리자베스가 츠베덴이 지휘하는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다만 절친인 히딩크가 PSV의 레전드인데 비하여, 츠베덴은 PSV의 최대 라이벌인 아약스의 팬임을 고백하여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유쾌한 모습으로 함께 등장한 두 사람은 서로를 각각 '얍'과 '후스(거스의 네덜란드 원어 발음)'로 부르며 친근함을 드러냈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장면.tvN
 
두 거장이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때의 첫 인상은 어땠을까. 츠베덴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웅장함에 감명받았다"고 고백했다. 반면 히딩크는 "겨울에 왔는데, 너무 추웠다. 울산에서 첫 훈련을 하면서 당시 영하 15도였는데 체감하기에는 35도 같았다"며 생각보다 혹한의 날씨에 당황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히딩크는 "춥기도 했지만 선수들의 열기로 따뜻했다"며 미소지었다. 
 
두 사람의 첫 인연은, 우연히 츠베덴이 출연한 방송 다큐멘터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히딩크가 먼저 연락을 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히딩크는 "얍이 뮤지션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꺼내주는 모습을 보고 내가 축구팀을 만들어나가는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꼈다"라고 설명하며 "축구와 음악은 다른 영역이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 얍이 어떻게 단원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지 궁금했고 제 영역에 그것을 적용해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히딩크 역시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당시 대한민국대표팀을 이끌면서 수많은 선수들을 발굴해낸 바 있다. 특히 이전까지 무명에 가깝던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조련을 통해 훗날 세계적인 선수로까지 성장했다. 히딩크는 "박지성의 발전이 정말 자랑스럽다. 당시 박지성은 잘 알려져 있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발전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선수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리고 그는 증명해냈다"고 극찬했다.
 
이처럼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는 거장들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츠베덴은 "음악 감독과 지휘자의 임무란, 가장 재능이 많거나 적은 단원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라며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갖고 있고, 그 수백 명의 단원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히딩크는 "팀을 만드는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했다"고 공감하며 "얍이 설명한 내용은 축구와 스포츠에도 해당된다. 재능있는 선수들을 팀이라는 구조로 모두가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히딩크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시절 여러 가지 새로운 규율과 문화를 도입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히딩크는 대표팀 이동시 복장통일, 식사시간 통일과 휴대폰 사용 금지, 경기 중 선후배간 반말 사용 등의 파격적인 지시로 큰 화제를 모았다.
 
히딩크는 "많은 룰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어떻게 해야 축구를 잘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게 축구의 아름다운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독으로서 선수들이 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지않게끔 해야했다. 팀과 감독의 말에 집중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흔들리기 마련"이라며 "그럴 땐 외부의 소리를 차단해야 한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가는 거다"라며 자신만의 팀 장악 노하우를 밝혔다.
 
한일월드컵 이전까지 한국축구는 월드컵에 여러 차례 진출했으나 본선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변방에 불과했다. 개최국으로 망신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 라이벌이자 공동개최국인 일본과의 경쟁을 의식한 대한축구협회는, 고심 끝에 한국축구를 구원할 유일한 희망으로 히딩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히딩크는 "저는 저를 자극하는 환경을 만드는 편이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대한축구협회에게 원하는 사항을 요청했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바라본 한국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매우 '폐쇄적'이라는 것이었다. 히딩크는 "한국축구는 더 개방적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감독과 선수들이 매주 연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환경을 바꿔 나갔다"고 회상했다.

당시 히딩크는 한국축구의 문제점이 '기술보다 체력'에 있다고 분석하며 기존의 국내 축구전문가들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진단과 해법을 제시했다. 물론 히딩크가 선택한 길이 처음부터 지지를 받고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히딩크는"사실 그 당시에는 힘든 길을 가야만 했다. 월드컵까지 1년 반밖에 남지 않았고 대한축구협회에서는 반드시 16강을 가야만 간다고 했으니까. 초반에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때'오대영'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도 알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히딩크에게는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있었다. 히딩크는 "우리의 길을 갈 뿐이니까. (오대영 패배도) 팀을 만들기 위한 여정이었다. 맞서 싸우는 정신을 키우는 중이었고, 결국 월드컵에서 증명했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히딩크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의외로 폴란드와의 첫 경기를 꼽았다.

"2002년 성공 스토리에 대해 질문받으면 대부분 포르투갈(조별리그 3차전)이나 이탈리아(16강전)나 스페인(8강전)과의 경기를 떠올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첫 경기가 가장 중요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처음 승리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히딩크는 이탈리아전 골든골, 스페인전 홍명보의 마지막 승부차기 등 2002년의 명장면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머릿속의 비디오에 다 남아있다. 버튼을 누르면 이미지가 돌아온다"라며 "제가 그 시절의 일부였다는 게 아직도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츠베덴은 "거스가 한국에서 한 일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당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아무도 네덜란드 축구 이야기를 안 했다. 오직 거스와 대한민국 이야기 뿐이었다"고 증언했다.

'리더로서의 역할'이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장면.tvN
 
4강 신화의 영광 이후 어느덧 22년의 시간이 흘렀다. 은퇴 후 칠순을 훌쩍 넘긴 노인이 된 히딩크는 "믿을 수 없는 건, 매년 한국에 오는데 여전히 2002년의 일을 궁금해한다는 사실이다.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을 10살짜리 아이가 저를 알아보더라"라며 "부모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거다. 2002년에 무슨 일이 있었고, 월드컵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말 듣기좋고 놀라운 일"이라며 뿌듯해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감독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츠베덴과 히딩크는 '리더로서의 역할'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도 밝혔다. 타인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더 혹독하다는 츠베덴은 "무대에 올라가면 단원들이 열심히 해주길 기대한다. 저는 하지 않으면서 단원들에게만 요구하면 그들도 안다. 본인이 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다"는 소신을 밝혔다.
 
히딩크는 "선수는 감독이 정직하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준다고 느끼면, 마음이 흔들릴 때 감독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감독은 때때로 선수에게 직언을 해야한다. 그게 선수들을 이끄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전 대표팀 감독으로서 히딩크가 바라보는 현재 한국축구의 상황은 어떨까. 히딩크는 한국축구가 차기 대표팀 감독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히딩크는 "한국축구는 제가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달라졌다. 2002년에는 안정환을 제외하면 외국에서 활동하는 선수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많은 선수들이 전세계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라며 "그만큼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한국 선수들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격려했다. 
 
마지막으로 히딩크는 '위기'라는 단어를 너무 남발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미래에 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라, 무엇을 발전시킬지를 고민하는 것이 한국에게는 중요하다"고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한국 선수들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을 높이 평가한 히딩크는 앞으로도 "한국축구만의 강인한 정신을 유지한다면, 더 멋진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따뜻한 덕담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유퀴즈 히딩크 츠베덴 한일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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