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장면.
tvN
두 거장이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때의 첫 인상은 어땠을까. 츠베덴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웅장함에 감명받았다"고 고백했다. 반면 히딩크는 "겨울에 왔는데, 너무 추웠다. 울산에서 첫 훈련을 하면서 당시 영하 15도였는데 체감하기에는 35도 같았다"며 생각보다 혹한의 날씨에 당황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히딩크는 "춥기도 했지만 선수들의 열기로 따뜻했다"며 미소지었다.
두 사람의 첫 인연은, 우연히 츠베덴이 출연한 방송 다큐멘터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히딩크가 먼저 연락을 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히딩크는 "얍이 뮤지션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꺼내주는 모습을 보고 내가 축구팀을 만들어나가는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꼈다"라고 설명하며 "축구와 음악은 다른 영역이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 얍이 어떻게 단원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지 궁금했고 제 영역에 그것을 적용해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히딩크 역시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당시 대한민국대표팀을 이끌면서 수많은 선수들을 발굴해낸 바 있다. 특히 이전까지 무명에 가깝던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조련을 통해 훗날 세계적인 선수로까지 성장했다. 히딩크는 "박지성의 발전이 정말 자랑스럽다. 당시 박지성은 잘 알려져 있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발전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선수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리고 그는 증명해냈다"고 극찬했다.
이처럼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는 거장들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츠베덴은 "음악 감독과 지휘자의 임무란, 가장 재능이 많거나 적은 단원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라며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갖고 있고, 그 수백 명의 단원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히딩크는 "팀을 만드는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했다"고 공감하며 "얍이 설명한 내용은 축구와 스포츠에도 해당된다. 재능있는 선수들을 팀이라는 구조로 모두가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히딩크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시절 여러 가지 새로운 규율과 문화를 도입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히딩크는 대표팀 이동시 복장통일, 식사시간 통일과 휴대폰 사용 금지, 경기 중 선후배간 반말 사용 등의 파격적인 지시로 큰 화제를 모았다.
히딩크는 "많은 룰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어떻게 해야 축구를 잘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게 축구의 아름다운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독으로서 선수들이 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지않게끔 해야했다. 팀과 감독의 말에 집중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흔들리기 마련"이라며 "그럴 땐 외부의 소리를 차단해야 한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가는 거다"라며 자신만의 팀 장악 노하우를 밝혔다.
한일월드컵 이전까지 한국축구는 월드컵에 여러 차례 진출했으나 본선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변방에 불과했다. 개최국으로 망신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 라이벌이자 공동개최국인 일본과의 경쟁을 의식한 대한축구협회는, 고심 끝에 한국축구를 구원할 유일한 희망으로 히딩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히딩크는 "저는 저를 자극하는 환경을 만드는 편이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대한축구협회에게 원하는 사항을 요청했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바라본 한국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매우 '폐쇄적'이라는 것이었다. 히딩크는 "한국축구는 더 개방적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감독과 선수들이 매주 연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환경을 바꿔 나갔다"고 회상했다.
당시 히딩크는 한국축구의 문제점이 '기술보다 체력'에 있다고 분석하며 기존의 국내 축구전문가들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진단과 해법을 제시했다. 물론 히딩크가 선택한 길이 처음부터 지지를 받고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히딩크는"사실 그 당시에는 힘든 길을 가야만 했다. 월드컵까지 1년 반밖에 남지 않았고 대한축구협회에서는 반드시 16강을 가야만 간다고 했으니까. 초반에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때'오대영'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도 알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히딩크에게는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있었다. 히딩크는 "우리의 길을 갈 뿐이니까. (오대영 패배도) 팀을 만들기 위한 여정이었다. 맞서 싸우는 정신을 키우는 중이었고, 결국 월드컵에서 증명했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히딩크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의외로 폴란드와의 첫 경기를 꼽았다.
"2002년 성공 스토리에 대해 질문받으면 대부분 포르투갈(조별리그 3차전)이나 이탈리아(16강전)나 스페인(8강전)과의 경기를 떠올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첫 경기가 가장 중요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처음 승리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히딩크는 이탈리아전 골든골, 스페인전 홍명보의 마지막 승부차기 등 2002년의 명장면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머릿속의 비디오에 다 남아있다. 버튼을 누르면 이미지가 돌아온다"라며 "제가 그 시절의 일부였다는 게 아직도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츠베덴은 "거스가 한국에서 한 일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당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아무도 네덜란드 축구 이야기를 안 했다. 오직 거스와 대한민국 이야기 뿐이었다"고 증언했다.
'리더로서의 역할'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