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란티모스의 작품을 강하게 각인시킨 건 기막힌 엔딩 덕분이기도 했다. <더 랍스터>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떠나느냐, 장님이 되느냐 하는 선택의 순간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갔고 <킬링 디어>에서는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가족 중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아버지를 지독하게 그렸다. 시력상실, 죽음 외에는 탈출구가 없는 비정한 세계의 무지막지한 질서로 개인이 파괴되는 순간에 모든 이목이 쏠렸다.
란티모스의 확장은 또 다른 방향으로도 뻗어간다. 란티모스의 캐릭터들은 마리오네트에 비유되고는 했다. 냉혹한 세계의 질서에 파괴되는 역할 탓이다. 벨라의 성장이 주가 되는 <가여운 것들>에서는 그간 묻어두었던 캐릭터의 감정이 폭발한다. 유아기에서 성인까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며 세계를 배우는 벨라는 물론이고, 딸처럼 벨라를 대하지만 억압과 통제를 가하는 양면적인 고드윈 박사(윌렘 대포). 벨라를 유혹하지만, 되레 그녀의 매력에 빠져 파멸하고 마는 던컨(마크 러팔로)까지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들이 영화를 풍성하게 채운다.
벨라의 성장에 따라 세계를 보는 눈도 바뀐다. 성인의 몸이지만 문장이 아닌 단어로 의사를 표현하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유아기에는 무성영화 시대 공포영화 같은 흑백 화면과 어안렌즈를 통해 중심이 강조되고 주변부는 왜곡되는 좁은 화각이 쓰인다. 성에 눈을 뜨고 고드윈을 떠나 던컨과 세계 일주를 할 때는 화려함을 넘어 강렬한 색감을 자랑하는 컬러들로 세상의 놀라운 희로애락이 강조된다. 던컨을 떠나 자기결정권을 갖고 책과 사회활동으로 자아를 정립한 후에는 빈부격차와 성차별, 참정권과 노동권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 왜곡 없이 차가운 톤의 화면으로 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