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돌핀> 스틸 이미지
㈜마노엔터테인먼트
나영은 대도시에서의 삶에 익숙해진 대다수 2030세대들에겐 낯설게 여겨질 법한 존재다. 그는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에도 어릴 적부터 살던 집과 주변의 '대가족'이라 할 이들에게 헌신하며 자기만의 계획이나 은밀한 사생활을 딱히 드러내지 않는다. 나영의 일상은 남들보다 부지런히 집을 관리하고 대가족의 끼니를 책임지면서 고향마을의 소식지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본인 또한 자신의 역할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데다 동네에 대한 애향심도 (요즘 청년들과 동떨어져 보일 만큼) 투철하다. 그에겐 서천이라는 동네가 응당 이래야만 한다는 뚜렷한 그림이 있다. 영화 초반에 난폭 운전으로 고즈넉한 골목길을 질주하던 (외지인으로 추측되는) 스포츠카를 목격한 나영은 울분을 터트리며 휴대전화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해 경찰에 신고하려 한다. 화가 난 건 충분히 수긍이 되지만 좀 과해 보이는 반응이다.
엄마 정옥의 이사 종용과 그에 반발하는 딸 나영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그의 출생 비밀이 어렴풋하게 관객에게도 알려진다. 나영이 가슴속에 품고 있던 특별한 사정은 그로 하여금 고향집과 자신이 현재 형성한 대가족과의 유대감을 집착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한편 별달리 억울한 대접이나 차별대우를 받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영은 자신이 이 동네 토박이라는 의식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애향심 면으론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투철하게 향토의식을 지녔음에도 외부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해 명백히 반대하는 입장으로 자연스럽게 향한다.
그런 중간자적인 포용력은 다양하게 발현된다. 누군가 고향을 떠나려 하면 함께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과 함께, 볼링장 사장 미숙처럼 어디선가 문득 들어와 속을 알 수 없는 타지 출신들을 토박이들과 구분하려는 편견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반발한다. 자신의 정체성 혼란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영과 어울릴 때는 그저 사람 좋은 표정을 짓던 삼촌과 동생들이 미숙에 대해선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 나영은 편견이라 단언하며 항의한다. 그런 나영의 포용력은 해수와의 관계 진전으로도 연결된다. 단조롭던 나영의 일상에 불어닥친 평지풍파 속에서 나영은 대항마처럼 그동안 손대지 않던 볼링에 열중한다. 자세가 바뀌고 솜씨가 금방 늘어난다. 하지만 '돌핀'은 두 번 다시 그에게 깃들지 않는다.
나영과 가족들은 불안한 전환점에 다들 서 있다. 나영은 시골 벽촌이 아닌 도회지에서 자립해 자신의 소망을 설정하고 도전해야 한다. 엄마의 취지는 명백하다. 하지만 나영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단정한다. 마치 악인이 아닌 '반동인물'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 새 출발을 목표로 이제는 그만 이혼녀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엄마의 확고한 태도, 서울로 막연히 상경할 고민에 빠진 남동생 성운의 나이에 걸맞은 혼란들에 연거푸 부딪히며 나영의 믿음은 거세게 요동친다. 미숙과 교류하고 해수의 호감 어린 지원을 받아가면서 나영은 자신의 마음속 구멍을 메우고 느닷없이 불어닥친 격랑에 대처해야만 한다.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 서해 바닷가 서천의 색채
영화의 출연자 명단에 올라 있진 않지만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주인공은 '서천'이라는 동네 그 자체다. 나영을 둘러싼 작은 소란은 거의 전적으로 고향에 대한 관점과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유년기의 상처로 나영의 가슴속에 자리한 가정사 때문인지 그는 자신이 어렵게 쌓아 올린 현재의 '가족'과 '고향'에 집착한다. 요즘 청년세대에겐 보기 드문 면모다. 그저 대책 없이 애향심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라면 동 세대에게 오히려 비현실적 캐릭터로 받아들여질 테지만, 영화는 나영이 그렇게 별난 행보를 보이는 근원을 가족과 과거사로 보강해 개연성을 부여하려 공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남들 눈에는 보잘것없고 관광자원도 딱히 돋보이지 않는 궁벽한 서해 바닷가에 불과하지만, 나영에겐 어렵게 유지해온 마치 자신만의 요람 같은 곳이다. 그에게 엄마 정옥이 이제는 그만 팔자는 낡은 단독주택은 그에겐 단순한 집을 초월한 안전한 요새에 다름 아닌 것. 이 집 팔아서 시내 아파트로 이사해 살라는 권유에 특별히 사연이 없는 또래라면 만세를 부를 테지만 나영은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엄마 정옥은 무턱대고 나영에게 강요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혼 후 나영과 성운을 건사해 온 그에게도 자신만의 인생을 노후에 누리고픈 소망이 있다. 그렇게 본인은 새롭게 출발하는 김에 장성한 자녀들도 홀로서기에 도전해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길 바라는 것이다. 30대가 훌쩍 지났으니 예전 어른들이라면 경기를 일으킬 만하다. 그래서 아들 성운의 대책 없는 서울행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로막지 않으려 한다. 그런 정옥의 뜻이건만, 나영은 오히려 (자신의 과거 때문에) 더 불편하다. 자기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단 하나면 족한데 자꾸만 엄마가 그 안전한 둥지를 허물어뜨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 안 썩이던 속을 한방에 썩이기 시작한다.
그런 주인공의 갈등에 조언자가 되어주는 존재가 등장해야 위기탈출에 도움이 될 테다. 영화에선 기묘한 연관성을 공유하는 존재들이 여럿 등장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나영은 동네 토박이가 맞지만, 원래부터 정옥과 혈연으로 이어진 게 아닌 듯하다. 정옥은 동네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했지만, 처음부터 이 동네 사람은 아니었고, 당구장 사장 미숙은 동네에 들어온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소문 안 좋은 이방인으로 돌림을 당한다. 서울에서 서천으로 내려온 해수는 별종 취급을 받는다. 반면에 19년 내내 이 동네를 떠난 적 없는 성운은 막연하고 두렵긴 하지만 둥지를 떠나 너른 도회지에서 변화를 맞고 싶은, 그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품어볼 법한 열망에 휩싸인 상태다. 각자의 '욕망'이 서로 고유의 중력장처럼 부딪히고 간섭하며 이야기는 퍼즐을 맞추듯 두텁게 형태를 갖춰나간다.
나영이라는 캐릭터는 조금만 건성으로 설계하면 비현실적이기 그지없는 존재다. 조그만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영화 속에서 그가 직업적 전문성을 그다지 보여주진 않기에 다소 편의적 설정으로 봐도 될 법하다. 대신에 취재를 통해 볼링장 사장 미숙과 만나고, 지역 분위기를 고루 접하게 되는 매개 역할은 확실히 소화해 준다. 미숙은 나영 중심으로만 보면 한없이 목가적이고 정 많게 보이는 이 동네의 이면, 외부인에 대한 불신과 장벽을 드러내는 기제로 확실히 자리매김한다. 정옥은 기성세대의 전형으로 속도 깊고 정도 많지만 여태껏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조바심을 터뜨리며 독선적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성공한 1세대 이민자가 자기만 못해 보이는 2세대 이민자와 반목하는 경향을 엿보이기도 한다. 정옥-나영-미숙 세 여성이 처하고 생각하는 지점이 곧 이 영화의 핵심 갈등 축이라 봐도 무방해 보인다.
영화에서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고향 동네가 나영에 의해 이상화되는 반면, 주변 인물들은 동네의 한계를 확연히 느끼는 중임을 알 수 있다. 나영의 신문사 동료는 박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직한다. 그들이 받는 급여는 (지역 소규모 언론이나 사회단체 활동가라면 거의 당연시될 법한)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고 (그것조차 여러 부대행사나 위탁사업으로 겨우 채울 수 있는 경우이니) 독신으로 자가주택이 있는 나영 정도만 감당할 수 있는 경우일 테다. 누구나 이 동네를 좋아하지만, 현실적 여건 때문에 떠나야 하거나 안착할 수 있을까 불안해한다. 해수 역시 일단 제대로 여기에 정착하려면 집을 사야만 되나 하지만 홀몸이긴 해도 직장 한구석에 자리한 기숙사 단칸방에서 기거하는 그의 형편 또한 넉넉하진 않아 뵈는 게 현실이다. 영화가 주력하진 않지만, 지역 소멸 혹은 공동화의 가장 큰 요소인 경제적 붕괴는 빠질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한다.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찰나의 휴식처럼 다가오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