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신영이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하차 통보를 받았다. 다른 자리도 아닌 '전국노래자랑'의 MC였고, 전 국민이 사랑한 고(故) 송해의 후임이었다. 그러나 김신영은 1년 5개월여 만에 쫓겨났다. KBS의 갑작스러운 하차 통보에 김신영 측은 물론, 제작진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최근 KBS는 박민 사장 취임 이후 새로운 변화를 꾀한다는 명분으로 프로그램을 대거 폐지하고 있다. <옥탑방의 문제아들>, <홍김동전>, <역사저널 그날> 등 다수의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김신영의 하차는 단순한 진행자 교체가 아니다. 새로운 '여성' 국민 MC의 시작이 허무하게 그쳤다는 데 있다. 중년 남성, 남성 코미디언이 장악한 방송계에 여성 아이콘의 등장은 이토록 어렵다.
 
김신영의 신바람은 순탄치 않았다
 
 2022년 9월 17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미사경정공원에서 진행된 KBS 1TV <전국노래자랑> 경기도 하남시 편 녹화현장. MC 김신영이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2022년 9월 17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미사경정공원에서 진행된 KBS 1TV <전국노래자랑> 경기도 하남시 편 녹화현장. MC 김신영이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KBS
 
2022년 10월부터 김신영은 '전국노래자랑' MC로 활약했다.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송해의 빈자리는 어느 방송인이 와도 대체하기 어렵다. 시청자 역시 긍정적이진 않았다. "송해 선생님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 "어리고 어색한 MC",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다" 등 김신영의 어리숙한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이어졌다.

제2의 송해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부응하기 위해 되려 자신만의 색깔을 잃은 듯한 김신영이었다. 김신영의 투입에 10~30대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하다'는 평이 돌아왔지만, 주 시청자층인 60대 이상의 호응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송해가 MC를 맡았던 때의 시청률은 10%대. 김신영이 처음 교체되었을 때 9.2%로 출발한 시청률은 지난해 10월 3.4%까지 떨어졌고 이후 4~5%대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김신영의 MC 교체를 당연한 수순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지만, 우려 섞인 반응도 적지 않다.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 지난 5일 올라온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김신영 파이팅'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천 명 넘게 동의를 얻었다. 해당 글에는 "김신형의 진행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었다. 꼭 나이 든 사람이 진행 하라는 법 있느냐. 국민의 방송인데 왜 진행자를 막무가내로 바꾸냐"는 의견이 담겼다.

천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글은 30일 이내로 KBS가 답해야 한다. 현재 게시판에는 담당자가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는 문구가 뜬다. 과연 KBS는 뭐라고 답할까.

또한 김신영의 하차가 방송계 내 여성 방송인의 입지 축소를 보여준다는 의견도 있다. 여러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젊은 여자라서 하차하는 게 말이 되냐", "여성 방송인에게 성장할 기회를 달라", "송해를 대체할 수 있는 남성 방송인은 있느냐" 등 KBS의 선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여성 방송인을 위한 변명
 
 방송인 김신영.
방송인 김신영.미디어랩 시소
 
냉혹한 방송계에서 여성 방송인이 살아남기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2007년 방영된 <무한걸스>는 여성 방송인들로만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남성 중심 프로그램과 확연히 달랐다. 초반 인기와 달리, "개념 없고 시끄러운 여자들"이란 비난과 함께 종영했다. 다시 <무한걸스>를 보면 차별적인 웃음 코드가 낯설다. 애인이 없는 여성 출연진을 노처녀라고 놀리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소개팅 상황극에서 폭탄이 되는 등 그때는 웃었지만, 지금은 웃지 못하는 소재가 수두룩하다.

여성 방송인이 말솜씨나 개그 능력이 아닌 자신을 향한 외모 평가와 차별을 유머 소재로 사용하던 시절. 그 속에서 여성 방송인은 진정성 있는 MC나 아이콘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단발적인 웃음을 주는 부차적인 존재에 그쳤다. 시대 변화에 따라 남다른 먹방을 보여준 이영자, '걸크러시' 김숙, 노련한 진행 실력의 송은이와 박경림이 주목받으며 여성 연예인을 향한 대중의 시선도 변화하였다. 이전보다 여성 방송인의 활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 방송인을 향한 높은 도덕적 잣대와 평가 속에 그들은 한 번의 실수, 혹은 한 번의 실패로 부정적인 이미지에 갇힌다. 쉽게 '노잼'이 되고, '논란'이 되는 여성 방송인들에겐 부딪히면서 성장할 기회란 없다. 특히 토크 쇼나 '전국노래자랑'처럼 여러 관객과 소통해야 하는 큰 무대에서 여성 MC를 찾아보기란 여전히 어렵다.

TV에서 실수하면 바로 사라지고, 자주 등장하면 '인기', '대세'라는 평가 대신 "질린다"는 반응이 돌아오는 게 여성 방송인의 현실이다. 그래서 '전국노래자랑' MC로 발탁된 김신영의 존재가 귀했다. 중년 남성에게만 집중되었던 MC 열풍 속에 균열을 만든 줄 알았는데 다시금 견고한 벽에 부딪혔다.

김신영에게, 아니 여성 방송인에게 더 성장할 권리를 줄 수는 없는가. 전 국민을 웃기고 울리는 여성 MC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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