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로기완>의 한 장면.
넷플릭스
근래 넷플릭스에서 한국 영화를 보면 실망스러운 작품이 많다. 그러다 보니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작품에 대한 선입견도 생겨난다. 이번에도 기대보다 못할 것이고, 단순한 킬링타임 영화일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 배우나 제작진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로 인한 나비효과다.
<로기완>은 조심스럽게 다른 기대를 걸어볼 만한 작품이었다. 소재를 다루는 관점이 독특했기 때문. 물론 탈북자들의 어려움 자체는 새롭지 않다. 차인표 주연의 <크로싱>(2008)이 대표적이다. <로기완>은 달랐다. 한국에 입국하려는 탈북자가 아니라 유럽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탈북자를 다룬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기대는 일부 충족된다. <로기완>은 통상적으로 고려하지 못했거나 조명받지 못한 현실을 드러낸다. 인간답게 살려고 북한을 탈출했지만, 또다시 '거주할 권리'와 '떠날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아이러니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탈북자의 절박함과 억울함을 연기한 송중기의 연기력도 시청자의 시선을 붙들기에 충분하다.
대신 한계도 명확하다. <로기완>은 한 탈북자의 사연을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하기 위해 장르를 전환한다. 그러나 탈북자의 난민 신청기가 멜로로 전환되는 분기점을 보여줄 방식을 잘못 선택했다. 그 결과 <로기완>은 시청자를 설득할 힘까지는 보여주지 못했고, 끝내 기대를 저버린다.
생존의 의미를 묻다
<로기완>은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생존'이다. 구체적으로는 '생존의 의미'를 묻는다. 시작부터 카메라는 로기완의 생존기를 화면에 담는다. 벨기에 정부가 난민 신청을 받아주기 전까지는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완. 그는 공중화장실을 숙소로 삼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밥을 먹고, 공병을 모아 번 푼돈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이 시퀀스는 담담하기에 강렬하다. 일련의 사건이 픽션보다 팩트에 가까울 것이기에 울림이 더 크다.
중반부터는 그의 생존기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는다.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자책하는 기완. 그는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유언을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마리의 아버지 '이윤성'(조한철)은 정반대의 조언을 한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지금 처지에서 사치가 아니냐고. 일단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래서 기완의 이야기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난민 심사 과정이나 고기 공장에 불법으로 취업하는 장면은 문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보여준다. 반면에 쓰레기를 찾아 먹던 기완이 멀끔하게 고기를 구워 먹고, 마리와의 사랑을 싹 틔우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대목은 그가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려는 노력을 상징한다. 즉, <로기완>은 그가 어떤 생존을 선택하는지를 뒤쫓는 영화인 셈이다.
멜로가 등장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