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형 이야기>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2.
가느다란 스탠드에 만들어진 인형을 고정시키고 매 장면을 하나하나 촬영한다. 매 초에 필요한 수십 장의 프레임컷을 모두 수작업으로 움직여가며 찍는 것이다. 음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이어 붙은 컷의 움직임에 맞춰 최대한 자연스럽게 후시 녹음된 사운드를 오버랩시켜야 할 것이다. 촬영과 편집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그렇다.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인 인형과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필요하다. 어떤 인형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다시 활용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나 그 역할에 맞춰 새로운 인형을 만들기도 해야 한다(동일한 인형도 다양한 표정을 만들거나 망가지는 경우를 대비해 추가 제작이 필요하다). 배경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눈에는 금세 지나고 마는 하나의 장면조차 현실의 길고 긴 시간 위에서만 직조될 수 있다.
문제는 현실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감독과 그로 인해 함께 부산한 테이블 위의 인형들 사이로 예상하지 못한 균열은 언제나 있어 왔다. 대표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있다. 느리고 고된 작업을 담보로 하는, 그럼에도 완벽하게 매끄러울 수 없는 이 작업을 이 시대는 이제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빠르고 섬세한 컴퓨터 그래픽(CG, Computer Graphics)이 대세인 시대다. 대중은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캐릭터를 원하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애니메이션을 찾는다. 이는 극 중 애니메이션의 주요 캐릭터인 요괴와 나무꾼을 자신의 전작인 <요괴진격도>(2018)로부터 가져온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극에서도 표현되고 있듯이,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현실적 한계 앞에서의 다양한 감정이 이들이 다시 한번 활용되는 상황 속에 담겨있다.
03.
한숨과 함께 박 감독이 방을 나서고, 남겨진 인형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깨우며 본격적인 극을 시작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들의 모습 또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다. 이야기적으로는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차용하고 있다. 극을 완성하기 위한 외형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 작품 속 애니메이션 장면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스톱모션 애니메이터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노력과 그 과정을 보여주는 대상이자, 새로운 기술에 밀려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하나의 장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수단이다. 감독 자신이 걸어온 길,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물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박 감독 본인의 연기는 꽤나 어색하다. 전문 배우가 아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인형 이야기>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쪽은 조금 다른 지점에 있다. 이 작품이 간략하게나마 하나의 장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과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자신의 삶과 시간을 녹여 장르의 구멍 난 자리를 메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잊힌 자리에서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숭고한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