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편의상 '오컬트'로 분류하지만, 믿을 수 없는 세계를 믿게 만드는 건 장재현 감독의 특기다. 데뷔작 <검은 사제들>은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걸작 <엑소시스트>로 유명해진 가톨릭의 구마 의식을 서울 한복판에서 매끈하게 구현했다. <사바하>는 불교의 미륵불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적 문제인 사이비종교의 실체와 신의 존재 의미를 묻는 기독교적 질문을 절묘하게 배합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전작들과 <파묘>가 같은 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검은 사제들>에서는 보조 사제 최 아가토(강동원)에게 구마 의식을 하는 김 베드로 신부(김윤석)가 영신(박소담)에게 못된 일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라는 교단의 비밀임무가 주어진다. <사바하>는 사이비종교를 고발하는 박 목사(이정재)가 진짜 메시아일지 모르는 사슴동산(동방교)의 교주 김제석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이다. 전작의 주인공들은 신을 믿는 종교인이었지만 악마, 사후세계, 불로불사 등 믿을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해 차차 믿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반면 <파묘>는 확고한 믿음을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장로까지 올라간 독실한 개신교 신자 영근조차 귀신을 달래는 무당들의 굿이나 배산임수를 논하는 풍수지리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의뢰인에게 '숨기는 게 있냐'고 계속 캐묻는 상덕처럼 영화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궁금해하는 오컬트적 영역보다 이 사건들이 '왜' 일어나게 된 건지 원인을 찾는 미스터리의 영역에 더 깊숙이 발을 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