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더 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 캡쳐 이미지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더 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 캡쳐 이미지웨이브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졌다. 공고해 보였던 '신념'의 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실존적 위기 앞에 '언어'는 공허했고, 의심이 피어오르자 균열이 발생했다. 생존을 약속했던 '공동체'는 급속히 와해됐다. 구성원들은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고 일종의 자괴감을 경험했다. 그들은 어떤 가치를 붙잡을 것인가.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아래 <사상검증구역>) 이야기다. 

<사상검증구역>은 국내 최초로 시도한 이념 서바이벌 예능이다.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 4개 분야에서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출연자들이 커뮤니티 하우스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합숙을 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일종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매일마다 새 '리더'를 선출하고, 구성원들은 저마다 권력을 차지하고 생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영악한' 제작진은 끊임없이 입주자들을 압박한다. 다양한 질문과 문제를 던져 고민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종신 리더'를 뽑는 미션이 있다. 입주자들은 입후보한 2명의 후보가 내건 기치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제시하는 공약을 꼼꼼히 따진다. 하지만 고민 끝에 결국 자신의 이익, 그러니까 생존에 부합하는 투표를 한다. 어쩌면 그것이 투표의 본질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 궂은 날씨에 새로운 입주자(난민)를 추가하여 기존 입주자들을 당황시킨다. 게다가 새로운 입주자의 정체는 (이란에서 온) 외국인이다. 이때 제작진은 선택지를 제시한다. 정착금을 이주민에 호의적이었던 입주자들에게서 갹출할 것인가, 공금에서 지출할 것인가. 입주자들은 저마다의 신념과 규칙을 앞세워 토론을 벌이지만, 날 것 그대로인 현실 앞에 혼란을 겪는다. 

현실에서는 점점 힘을 잃게 되는 이념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더 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 캡쳐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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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검증구역>을 시청하다 보면 이념이라는 게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가상의 공동체가 구성되었을 때, 우리는 소위 '우파'는 우파끼리 '좌파'는 좌파끼리 모여서 세력을 이룰 거라 예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상황들이 많이 발생했다. 정치적 이념이 달라도 젠더, 계급, 개방성에서 성향이 비슷한 입주자끼리 협력하기도 하고, 그밖에 다양한 조합도 가능했다.

좀더 강력한 변수로 작용한 건 '생존'이다. 입주자들은 퇴소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성향을 숨기기도 하고, 좀더 유연한 방식으로 대처한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과 국민의힘 정치인이 손을 맞잡는 상황도 벌어진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입주자와 페니미즘에 적대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입주자가 한 편이 되기도 한다. 오히려 개방성은 별다른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성장 과정의 경제적 배경은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어렸을 때 가정 환경이 가난했는지 부유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어떤 성향(달리 말해 계급 의식)은 생각보다 뿌리 깊어서 다양한 사안들을 판단하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와 더불어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건 성장 과정에 있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었느냐이다. 

가령, 입주자 중 '하마'는 어렸을 때 지독히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주변에 온통 도와주는 사람 투성이라 인간의 선의를 믿게 됐고, 복지 제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사회의 안전망을 긍정하게 됐다. 반면, '낭자'와 '다크나이트'는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노력으로 자수성가를 이뤘기에 사회의 시스템보다 개인의 노력을 신뢰한다. 

생존 앞에 와해되는 공동체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더 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 캡쳐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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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상검증구역>은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사상 검증에 나서며 입주자들이 자신의 신념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첫 탈락자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을 돌이켜 보자. '그레이'는 자신을 의심한다는 이유로 '하마'를 사상검증해서 그의 (커뮤니티 내에서의) 생존권을 박탈한다. 공동체의 전원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그의 변심은 다소 의아하기까지 했다. 

이때 탈락면제권을 보유하고 있는 입주자들은 주저하며 하마에게 양도하지 않고, 결국 하마는 씁쓸히 퇴소하게 된다. 이 장면은 우리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결국 생존 앞에 공동체는 쉽게 와해된다. 또 불순분자 '벤자민'이 '마이클'을 사상검증하자, 종신 리더인 '백곰'이 탈락면제권을 양도한다. 개인적 약속에 기반해 자신의 것만 양도를 했을 뿐, 리더로서 다른 인물들의 탈락 면제권 사용을 독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는다.

'낭자'가 퇴소 당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니'는 자신의 안위를 염려해 주저하다 뒤늦게 탈락면제권을 양도하려 하지만 너무 뒤늦은 결정이었다. '백곰'은 공동체의 일원인 '낭자'를 구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낭자'가 '아직 기자로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입주자들은 탈락면제권 사용은 전적으로 '지니'의 선택이라며 뒷짐을 진다. 실망감과 공포심이 공동체를 잠식하게 되었다.

<사상검증구역>은 성인이 된 후 '지식'으로 습득한 신념이 얼마나 허술한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이념이라는 게 실상 굉장히 허약한 것임을 증명한다. 생존이라는 지엄한 과제 앞에 우리는 평소의 신념과 별개로 얼마든지 타인과 협력할 수 있다. (물론 배신할 수도 있다.) 역할과 상황에 따라 자신의 신념과 다른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고,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훨씬 더 유연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검증구역>에 참여해야 한다. 이 엄청난 몰입감에 스스로를 던질 필요가 있다. 평소 갖고 있던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파훼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더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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