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회장, 클린스만 감독 경질 발표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클린스만 국가대표팀 감독 경질을 발표하고,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권우성
클린스만이라는 큰 걸림돌을 제거하기는 했지만, 축구대표팀 사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해야할만큼 난제들이 수두룩하다.
첫 번째는 클린스만과의 수상한 계약 및 위약금 문제와 관련된 미스터리다. 축구협회는 2023년 2월 클린스만 사단을 영입하면서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다. 클린스만이 자진사퇴가 아니라 경질된만큼 그와 함께한 코치진에게 남은 계약기간에 대한 위약금을 지급해야하는데, 그 총 규모는 70억에서 최대 100억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협회의 재정에 당장 엄청난 부담이 될뿐만이 아니라 후임 감독을 영입하는데도 큰 걸림돌이 될수 있다.
클린스만은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맡는 동안 국내에 거의 체류하지 않았고, 사실상 태업과 직무유기라고 할 정도로 불성실한 근무태도로 내내 일관했다. 정상적인 계약이라면 클린스만에게 상당한 귀책사유가 있는만큼, 이대로 위약금을 전액 지급해야한다는 것은 석연치 않다. 만일 클린스만의 이러한 기행을 묵인하는 조항도 계약조건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이는 역대급 부실계약이자 인사참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론은 설사 위약금을 지불한다고 해도 축구협회 재정이 아닌 정 회장의 사비로 해결해야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두 번째는 클린스만 사태를 초래한 축구협회의 책임론과 인적쇄신 여부다. 잘 돌아가던 감독 선임 프로세스를 깡그리 무시해가며, 이미 해외에서도 지도자로서 경력이 끝났다는 평가를 받던 클린스만을 데려온 협회의 실책이야말로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흉이었다. 축구협회는 대체 무슨 명분과 절차로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낙점했고, 어떤 형태로 계약을 맺었는지 소상하게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정몽규 회장은 여론에 밀려 클린스만의 경질을 수용했지만 본인의 사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클린스만이 결국 한국축구를 망쳐놓고 퇴출된 만큼, 이러한 인물을 영입하는데 관여한 모든 축협 인사들과 최종결정권자인 정몽규 회장 역시 당연히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 번째는 차기 감독 선임 문제다. 당장 3월에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의 태국과의 2연전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초대한 신속한 감독 선임이 시급하다. 시간이 촉박한데다 클린스만의 위약금과 관련한 재정 문제도 얽혀있기에 또다시 외국인 감독은 사실상 어렵고 국내파 감독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일단 국내파 '임시 감독' 체제로 2차예선을 마친뒤, 6월까지 여유를 가지고 차기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이 현재 조 1위를 달리고 있는데다 약팀들과 상대하는 일정상, 임시 감독 체제로도 2차예선 통과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임시 감독 후보로는 홍명보(울산 HD ), 김기동(FC서울), 최용수(전 강원 FC), 황선홍(대한민국 U-23 대표팀), 박항서(전 베트남 대표팀 ), 김학범(제 주유나이티드) 감독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이나 박성화 감독이 대표팀에 억지로 끌려가 희생당한 사례를 기억하고 있는 K리그 팬들은, 2024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또다시 현직 프로팀 감독을 차출해가는 발상에 반발하는 여론도 상당하다.
국내파 감독들에 대한 저평가와 불신을 극복하는 것도 관건이다. 허정무나 신태용 전 감독 등은 대표팀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도 눈높이가 높아진 팬들의 비난에 임기 내내 시달린 바 있다. 홍명보 감독은 이미 2013년 대표팀 감독을 맡은 경험이 있지만, 당시 의리축구와 무전술 논란 등 클린스만 못지않게 많은 구설수에 휘말린 전력이 있기에 대표팀 팬들도 여론이 부정적이다. 지난해 이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황선홍 감독은 올해 올림픽대표팀의 2024 파리올림픽 본선진출에 전념해야 하는만큼 시기가 좋지않다.
현실적으로 현재 맡은 팀이 없고 능력이 검증되었으면서, 유럽파들이 다수인 대표팀의 개성강한 스타선수들을 장악할수 있을만한 카리스마까지 모두 충족하는 감독 자원은 현실적으로 그리 많지않다. 설사 있다고 해도 정식 감독도 아닌 임시 감독이라는 독이 든 성배같은 조건을 수용할 인물이 있을지도 관건이다.
마지막 네 번째로는 아시안컵에서 벌어진 '선수단 내분 사태'에 대한 수습책이다. 대회 기간중 신구 선수들의 심각한 갈등과 물리적 충돌까지 있었다는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졌다.
주요 관련자로 지목된 이강인을 비롯하여 여러 선수들이 제대로 확인되지않은 뉴스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지면서 지금까지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갈등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손흥민과 이강인은 대표팀에서 대체불가한 핵심선수들이라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넘어가지않는다면, 앞으로도 팀의 전력과 단합에 두고두고 큰 타격이 될수 있다.
민감한 선수단 내부 정보가 어떻게 외부에 유출되었는지부터가 뭔가 석연치않다. 선수단 내분 사태를 처음으로 보도한 것이 영국의 타블로이드지인 '더 선'이었는데, 이는 대표팀이나 축구협회 내부 측에서 누군가 고의로 정보를 흘린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선수들과 대표팀 이미지에 모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사안을 축구협회 측에 소문이 나자마자 빠르게 인정했다는 것도 의혹을 더한다. 이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국가대표 선수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축구협회를 불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차피 사건이 이미 공론화가 된 이상, 사실관계를 엄격하게 규명하여 그에 걸맞는 징계도 고려해야한다. 만에 하나 '하극상'이나 '파벌'의 존재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대표팀에서는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될 사안이다. 만일 스타급 선수들이 관련되고 있다고 해서 적당히 용서하거나 덮고 넘어가자는 억지 봉합은 오히려 더 큰 화근을 초래할수 있다. 지난 아시안컵 요르단전 참사에서 보듯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 모였어도 하나의 팀으로 단합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또한 최근 이강인이나 황의조 등 국가대표 선수들의 사생활이나 인성 논란이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는 것은, 국가대표로서의 품위 위반이나 기강 해이 측면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한다. 필요하다면 그 어떤 선수라도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음찹마속 할 수 있다는 각오가 요구된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클린스만은 떠났지만 한국축구는 여전히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 축구협회가 과연 이번 사태에 대하여 어떤 진정성있는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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