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SBS
2월 1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113회에서는 '선아의 SOS, 네 모녀 실종사건'편을 통하여 이호성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조명했다.
2008년, 서울 마포에 거주하던 올해 22살의 선아씨는 세 자매 첫째로 뮤지컬학과에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선아씨는 과에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모범생이었고, 바쁜 대학 생활 중에도 동생의 입시 준비를 물심앙면으로 도울 정도로 자매관계도 돈독했다. 선아씨의 가족은 1년 전 부친이 별세한 후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세 딸이 서로를 의지하며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다.
2월의 셋째 주 월요일. 방학이었지만 뮤지컬 공연을 앞두고 선아씨는 학교에서 늦게 까지 연습을 마치고 귀가한다. 선아씨는 근처 자취방에 가자는 친구의 제안을 집에 가야 한다며 거절하고 용인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이 모습이 친구들이 선아씨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다음날부터 선아씨는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감감무소식이었다. 선아씨만이 아니라 가족인 네 모녀가 모두 동시에 연락이 두절됐다. 일주일이 흘러 불안해진 선아씨의 외삼촌은 모녀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선아 엄마가 운영하던 가게의 직원들은 그녀가 "좋은 일이 있어서, 어디 며칠 여행 다녀온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외삼촌은 지구대 경찰들과 함께 선아네 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말끔히 정돈된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네 모녀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선아씨를 비롯해 네 모녀의 행적이 끊긴 것은 2월 18일, 선아 모친이 운영하던 식당의 주방장이 문자를 받은 건 2월 20일, 외삼촌이 가족 모두가 연락두절인 걸 알아차린 것은 24일부터, 외삼촌과 경찰들이 집을 찾아간 것은 26일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일주일이 지나 3월이 되어도 네 모녀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외삼촌은 다시 경찰에 신고했고, 단순 실종 이상의 심각한 사건임을 직감한 경찰은 강력팀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과학수사팀을 동원하여 집안을 수사하다가 집안에서 혈액반응을 검출해냈다. 누군가 집안에서 출혈이 있었고 그 흔적을 잉크로 감추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어 경찰은 1층 공용현관 엘리베이터 CCTV를 통하여 모녀의 행적을 추적했다. 실종 당일날 선아의 엄마와 두 동생은 집에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다만 용인에서 서울로 간다던 첫째 선아가 귀가하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또한 네 모녀 모두 집을 나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와 두 동생은 아파트 안에서, 선아씨는 집 밖에서 깜쪽같이 사라진 것.
경찰은 여기서 중요한 장면 하나를 추가로 포착해냈다. 오후 9시 15분경. 모자를 푹 눌러 쓴 한 남자가 대형 가방을 실은 카트를 수 차례에 걸쳐 반복하여 집 밖으로 나르는 수상한 모습이 CCTV에 잡혔다. 이어서 남자는 큰 이불과 핸드백으로 보이는 작은 가방 여러 개까지 챙겨서 사라졌다.
경찰은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하여 선아의 엄마와 가까이 지낸 남자가 있는지 탐문했다. 그런데 선아 엄마의 가게 직원은 "이름만 대면 아는 사람"이라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이름을 꺼냈다.
그의 정체는 이호성. 사건 당시 기준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9번이나 차지한 명문구단 해태 타이거즈의 4번타자 출신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20-20클럽(한 시즌 홈런-도루 20개 이상)까지 가입한 스타 선수였다.
이호성은 야구 선수 은퇴 후 사업가로 활동하던 2007년. 서울에서 선아 엄마를 만나 1년 정도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서는 두 사람이 곧 재혼할 것으로 알고 있었고, 이호성이 네 모녀와 가족처럼 함께 다니는 모습들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호성은 조사대상 1순위로 판단하고 수사를 이어갔다. 경찰은 네 모녀의 실종당일 이호성이 선아 엄마의 승용차 옆에서 큰 가방을 들고 있는 걸 봤다는 목격자들을 확보했다. 이호성은 당일 오후 7시경 네 모녀의 아파트로 들어섰다가 약 2시간 후 큰 가방 세 개를 갖고 혼자 나왔다. 하지만 네 모녀의 행방이 아직 밝히지지 않은 상황이라, 경찰은 섣불리 이호성을 납치나 살인의 용의자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유일하게 집에 들어오는 장면이 목격되지 않았던 선아씨는 어디로 간 것일까. 당시 선아와 함께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탔던 동기는, 선아씨가 버스 안에서 누군가와 휴대폰으로 통화를 했고 "우리 엄마가 만나는 분이 있는데, 다 같이 그분 고향에 내려가봐야 할 거 같아"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진술했다.
통신 기록을 조회하니 발신자는 선아의 엄마 휴대폰이었다. 그런데 선아가 전화를 받은 시각이 밤 11시경으로 선아 엄마와 두 동생이 이미 실종되고, 이호성이 세 개의 가방을 운반하여 집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CCTV에 찍힌 이후였음이 드러났다.
또한 동기는 "선아가 존댓말을 쓰면서 살짝 어려워하는 느낌이었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하며 통화 대상이 엄마의 휴대폰으로 통화한 상대가 엄마가 아닌 이호성이었음을 암시했다. 선아는 버스에서 내린 후 12시 5분, 종로 인근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 통화를 한 것을 끝으로 휴대폰 전원이 꺼졌다.
경찰은 이호성을 수사하다가 그가 이미 무려 7건의 사기, 횡령 혐의로 수배중인 전과자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이호성은 신용불량자라 자기 명의의 휴대폰, 통장도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한때 한국 야구계를 주름잡던 야구스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갑작스런 자살, 이후 들어온 결정적 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