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덤: 엑소더스> 스틸 이미지
㈜엣나인필름
아마 <킹덤: 엑소더스>를 선택할 때 내가 과연 5시간 초과하는 영화를 멀쩡하게 소화 가능할까 체력적 고민과 함께 감독 라스 폰 트리에에 대한 비호감이 중요하게 작용할 테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망발을 일삼는 감독의 영화를 굳이 봐줘야 한단 말인가! 같은 이들의 입장은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할 테다.
실제로 <킹덤: 엑소더스>는 사반세기 전에 비해 꽤나 달라진 세상의 기준과 안 맞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런데 유심히 돌아보면 어느 순간에 감독이 실제로 그런 편파적 시각을 가졌는지 의도적으로 시비를 집요하게 거는 것인지 분간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일단 참인지 농담인지 헷갈리는 부분은 지역감정이 아니라 옆 나라에 대한 비 호감 환장파티다. 하지만 서구사회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3세계 인접국들의 다양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유럽 각국의 미세한 결을 일일이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가 다분하다는 걸 인정할 필요도 있긴 하다. 왜 저리도 덴마크와 스웨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지 못해 난리일까 묘한 기분이 들 테지만 우리 또한 중국이나 일본 같은 바로 옆 나라들과 국민감정으로 치고받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부분일 테다.
명백히 판단이 나눠질 부분은 헬머 박사가 신경외과 동료 '안나'와 엮이며 벌어지는 성추행 소송이다. 미투 운동이나 피해자 중심주의를 냉소적으로 재구성하는 모양새로 상황이 몇 차례고 계속되는데 분명히 상당부분 분량이 과도하게 많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태도이긴 하다. 그래서 해당 분량 때문에 본 작품을 포기한다 해도 굳이 억지로 설득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감독의 의도를 존중하고자 살펴본다면, 사회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운동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혼란과 부작용에 대한 감독 특유의 불신과 분노의 복합적 감정이 통제 없이 쏟아지는 예시로 인식할 수 있겠다(동의가 아니라 이해의 차원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지지와 동의를 표명하면서도 실제로는 위선적인 사회 일각, 특히 엘리트 집단의 행태를 조명하는 데 집중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라스 폰 트리에는 처음부터 독선적이었고 금기에 대해 겁내지 않고 덤비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래서 2010년대 이후 그의 작업들은 균형 대신에 세계 영화계에서 누구도 감행하지 못하는 온갖 '우상 파괴'에 브레이크 없이 폭주해 왔다. 그 결과로 감독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입혔고 본인 자신도 먹어야 할 욕과 오해로 쌓인 욕을 뒤집어썼다. 그런 가운데에도 마침내 30년이 걸린 '킹덤 유니버스'의 거대한 종막을 마침내 세상에 선보이기에 이른다. 아마 본인도 <킹덤> 시리즈가 자신의 Life Work라 인정했기 때문일 테다.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결말일 테지만 그래도 마침표는 확실히 이론의 여지없이 찍었다는 데 일치할 테다.
<킹덤: 엑소더스>는 누군가에겐 과도하게 산만하고 뜬금없는 마무리로 폭주하는 3부 완결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에피소드에선 제법 길게 해설시간을 에피소드 말미마다 가졌던 라스 폰 트리에가 마지막 크레디트에선 한 줄로 정리하는 본인의 입장에 조금 더 주목해보면 좋겠다. '전부 도둑맞았다'라는 문장의 묵직함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무너져가는 유럽의 상황에 대한 절망, 좌절된 현실 유토피아에 관한 체념, 갈수록 더 나빠지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감독의 머릿속에서 뒤엉켜 분출하고 있다는 것쯤은 영화를 보고 나면 체감할 수 있다. 세상과 자신에 대해 회의하고 좌절한 작가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 동안 불편하고 진저리날 지경으로 쏟아낸 혈토 같은 작업이다.
<작품정보> |
킹덤: 엑소더스 The Kingdom Exodus
2022|덴마크|레전드 호러
2024.01.31. 개봉|307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보딜 요르겐센, 미카엘 페르스브란트, 라스 미켈슨, 니콜라스 브로,
튜바 노보트니, 니콜라이 리 코스
수입/배급 ㈜엣나인필름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제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제60회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
제66회 BFI 런던영화제 공식 초청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제40회 로버트 어워드 5개 부문 노미네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