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아래 사상검증구역)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판단의 축을 서바이벌 예능으로 구현했다. 프로그램은 사람의 가치관을 '정치(좌/우)', '계급(서민/부유)', '젠더(페미니즘/이퀄리즘)', '개방성(개방적/전통적)' 4가지 영역으로 분류한다. 12명의 출연자는 위 기준에 따라 '사상점수'를 부여받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갈등과 협력을 넘나들며 경쟁해야 한다. 

목적은 최대 상금 2억 원. 이 프로그램이 다른 서바이벌 예능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우승상금을 순조롭게 얻기 위해선 다양한 사람이 모두 섞인 커뮤니티 안에서 반드시 '리더'가 되어야 한다. 출연진은 이간질과 다를 바 없는 정치질 말고 갈등과 토론을 거친 '정치'를 해낼 수 있을까? 공개된 1, 2화를 보고 나면 미숙하지만 건강한 공론장을 만드는 일에 기대를 걸고 싶어진다. 

신선한 정치 서바이벌? 국가 운영 축소판 <사상검증구역> 
 
 웨이브 오리지널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메인 예고편 캡처본
웨이브 오리지널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메인 예고편 캡처본웨이브
 
<사상검증구역>의 서바이벌 룰 설명을 보면서 무릎을 쳤다. 서로 다른 이들이 9일 동안 리더를 뽑는 '정치 게임'이 사실상 국가 운영 방식을 본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이 커뮤니티 안에서 '주민'으로 불리고 투표를 통해 1일 '리더'를 뽑는다. 리더에게는 주민과 차별화된 강력한 권한을 준다. 주민 개인 자금 중 몇 %를 공금으로 걷을 것인지 정하고 공금 사용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갖는다. 이는 정부가 세율을 정해 세금을 걷은 후 국가 운영에 사용하는 방식과 같다. 리더가 메뉴 중 가장 비싼 삼겹살과 가장 저렴한 감자 중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장면이 마치 식량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과정처럼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공금은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공금을 늘릴 수 있는 수익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재밌었던 건 수익활동을 하러 갈 인원을 '리더'가 결정한다는 점이다. 수익 활동을 할 일자리 수는 정해져 있는데 리더가 공금 100만 원을 투입하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이처럼 리더에게는 국내총생산을 높이기 위해 주민들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다. 첫 번째 수익 활동에 가장 중요한 역량이 '현실 감각'이라고 공지한 대로 주민들은 앞에는 페르미 문제가 놓였다. 일터에 간 주민들은 문제 5개를 모두 틀려 빈손으로 돌아가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기 위해 상금이 반으로 줄어드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힌트를 본다.

그렇다면 주민은 공동 자산을 늘리는 일만 해야 할까? 주민에게도 사유재산권은 보장된다. 밤에 시작되는 익명 채팅 토론에 참여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 3대 3 찬반 토론으로, 이긴 팀은 개인당 상금 100만 원을 가져가고 진 팀은 개인당 100만 원씩 차감된다. 첫날에는 12명이 2000만 원을 최대한 공정한 방식으로 나눠 가져 개인 자금 간의 큰 차등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자연스럽게 벌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금 징수 비율이 개인 자금 액수와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되기에 세율 설정 과정에서 주민 간 갈등이 생길 일도 머지않아 보인다. 

당신의 사상 점수는 몇 점인가요? 
 
 참가자들이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 4가지 영역에 대해 갖는 의견의 정도에 따라 '사상 점수'가 매겨진 장면.
참가자들이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 4가지 영역에 대해 갖는 의견의 정도에 따라 '사상 점수'가 매겨진 장면. 웨이브
 
<사상검증구역>에서 생존하려면 리더가 되거나 세력을 형성해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을 리더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가장 주의해야 할 요건, 주민은 '사상 점수'를 들키면 탈락할 위기에 처한다. 

주민 12명 모두 사전 질문지에 대답한 것을 토대로 사상 점수를 받았다. 4가지 영역에 대해 개인이 가진 주장의 정도에 따라 1, 2, 3점 중 하나로 표기된다. 예를 들어 중산층이자 좌파 성향이 강하면 계급은 1점, 정치는 3점을 받는 식이다. 4가지 영역의 점수를 합산해 '사상 점수'를 매기기 때문에 점수는 최저 4점에서 최대 12점 안에서 분포된다. 총점이 12점이라면 모든 영역에서 명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자 4점인 사람과는 모든 영역에서 의견 차이를 보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게임을 위해 가치관을 임의로 점수화했으나, 한 사람은 4가지의 이념으로 범주화될 수 없고 이념만이 사회를 이루는 전부가 아니다. 주민 모두 4가지 영역을 교차한 스펙트럼 위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어떤 행동을 할지 더 예측하기 어렵다. 경제적 출신과 배경은 같지만 정치 성향이 다르거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이 달라도 정치 성향이 같으면 연대할 수 있을까? 타협 불가능한 상황과 이념이 명확하게 나타난다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골이 깊은 갈등 요소가 무엇인지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건강한 공론장을 위해 '사회적 가면'이 필요하다
  
 출연자가 사전 인터뷰에서 언급한 발언을 화면에 띄우는 장면.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장치다.
출연자가 사전 인터뷰에서 언급한 발언을 화면에 띄우는 장면.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장치다. 웨이브
 
제작진은 주민들에게 서로의 사상 점수를 추측할 만한 단서를 제공한다. 말한 사람은 밝히지 않고 출연진이 사전 인터뷰에서 언급한 발언을 화면에 띄운다. 예고편에서 논란을 빚었던 "동성애는 후천적 오류이다"라는 문장도 여기서 나왔다. "상속세는 더 떼어가야 한다", "경쟁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태되는 것이 맞다'는 문장도 이어졌다. 

웃고 떠들며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린다. 같은 공간 안에 나와 절대 좁힐 수 없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앉아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익명 채팅 토론을 마치고 나온 후에도 출연자들은 비슷한 말을 한다. 오프라인에서는 다들 중립적인 것처럼 보였으니 채팅 너머로 강한 주장을 펼치는 모습은 낯설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인간의 이중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나는 공론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적 가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풀어서 말하면, 공적 상황에서 부적절한 행동과 말은 숨길 줄 아는 능력이다. 이게 가능해야 토론이 모든 사람의 모든 의견을 경청하는 성토대회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동성애는 후천적 오류이다"와 "상속세는 더 떼어가야 한다"는 문장이 같은 층위에 있는 발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사회라면 전자는 타인의 성 정체성을 비하하는 말이므로 사회적 압박에 의해 공적으로 발언할 수 없는 사견 정도로 그쳐야 한다. 후자는 세금 징수를 둘러싼 정의의 직관을 건드리는 문제이므로 논의해 볼 만하다. 결국 탄탄한 논리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전자와 같은 발언은 차단될 정도의 성숙한 약속이 필요하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다른 이념을 가졌더라도 얼굴을 맞댄 토론을 통해 충분히 의견을 절충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공허한 타협보다 각 구성원이 격렬하게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는 모두 각자 선 위치에서 끝내 설득되지 않고, 설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약속', 다른 말로 '정치' 아닐까? 9일 동안 만날 9개의 정치에서 현실에 적용 가능한 대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상검증구역 더커뮤니티 웨이브 서바이벌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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