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들 'Wife'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큐브엔터테인먼트
'Wife'는 아내하면 떠오르는, 가부장제 속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시작한다. "나는 크림수프를 요리하지(I cook cream soup), 나는 너의 방을 빛이 나게 청소하지(I clean your room. It's so twinkle)"처럼 남편과 가족을 위해 요리하고 청소하는 아내의 타자 지향적인 역할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노래 속 화자는 이어진 가사 "내가 네 부인이 되길 원할 테지만, 글쎄(Want me as your wife but she is)"를 통해 전통적인 아내의 역할을 거부하려 한다.
노래는 논란의 가사로 진입한다. "자기야 한입 크게 맛봐 좀 더 줄 테니 그만 침 좀 닦아", "그래 그럴 줄 알고 케이크 좀 구웠어", "그게 다가 아냐 위에 체리도 따 먹어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냥 촙(CHOP)" 등 노골적인 성행위를 상징하는 노랫말이 등장한다. 해당 파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수용하는 메시지가 다르다.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노골적인 가사를 썼다는 의견과 여성에게 요구되는 섹시한 여성성을 비판 없이 답습했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자 메시지는 선명해진다. "와이프, 나는 너를 기분 좋게 하지. 거짓말처럼 느끼게 하지(Wife, I make you feel so high. I make you feel like lie)"라며 남편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혹은 좋아지게 만드는 아내의 역할과 임무를 논하다가 결국 "하지만 나는 원하지 않아(But I don't wanna)"라고 완강히 거부한다. 연달아 단어 'wife'를 네 번 반복하는 마지막 구절은 누군가의 부인, 아내, 와이프, 집사람이라 불리며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여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자)아이들은 지난 앨범에서도 '여성의 전형성'에 반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하겠다는 'TOMBOY'에서 "변태는 너야"라며 여성의 관음적인 누드를 살아있는 몸으로 전환한 'Nxde', 말랐든 살쪘든 모두 퀸카라는 '퀸카'로 이어지는 (여자)아이들의 메시지를 짚어본다면 신곡 'Wife' 또한 여성의 주체성을 노래한다는 것이 숨은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섹시하면서 주체적인 여성, 가능한가요?
문제는 주체적인 여성이란 메시지를 압도하는 섹시 콘셉트다. (여자)아이들의 'Wife'처럼 여성의 주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아티스트가 섹시한 콘셉트를 선택하는, 이른바 '주체적 섹시'는 K팝 문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나를 흘러내리게 해달라(make me water)'는 tyla의 'water', '누가 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해달라'는 doja cat의 'Agora Hills'처럼 빌보드 상위권에서 당당함을 겨냥한 주체적 섹시 콘셉트의 여성 아티스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주체적 섹시는 결코 주체적 여성으로 이어질 수 없다. 여성의 위치가 욕망하는 주체가 아닌 여전히 대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적으로 욕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해서 욕망의 대상이 되었을 뿐, 이는 여성 대상화의 또 다른 방식인 셈이다. 특히 스스로 선택하여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체성을 획득한 거 같지만, 결국 여성의 능력을 성적 매력으로 평가하는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며 이를 따라야 한다는 의무에서 자발적인 의사로 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