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한 장면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한 장면tvN
 
"좋아해요." 유지혁(나인우 분)이 말한다. 그리고 "저는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덧붙인다. 강지원(박민영 분)도 그가 좋은 사람인 걸 안다. 심지어 밀키트 프로젝트로 위기에 빠진 지원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지원은 그의 손을 잡을 수 없다.

tvN 월화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도발적인 제목처럼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남편과 친구로 인해 목숨을 잃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하지만 드라마는 인생 2회차를 맞이한 강지원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두 사람에게 복수하는 평범한 전개를 넘어, '여성의 자아찾기'라는 보다 본질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도움을 손길 대신 

로맨틱코미디 장르답게 주인공의 곁엔 '백마 탄 왕자님'과 같은 유지혁이 있다. 심지어 그는 오래 전부터 강지원을 흠모해왔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유지혁 역시 과거로 돌아온 인물이다. 그래서 유지혁은 더는 10년 전처럼 그를 잃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리고 이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데 거침이 없다. 고백도 마찬가지다.

10년 전으로 돌아온 강지원은 유지혁에게 "웃는 걸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유지혁은 자신의 마음이 드러날까 전전긍긍 하며 표정을 숨기고 미소 한번 제대로 지었던 적이 없다. 그러던 그가 달라졌다. 지원의 말 한 마디에 헤어스타일이 바뀌고, 서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지원은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의 마음을 몰라서도, 그가 좋은 사람인 걸 몰라서도 아니다. 지난 생에, 누군가를 좋아해서 그 관계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던 그 삶을 다시는 되풀이 하고 싶지 않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 결심은 그가 유지혁의 손을 잡을 수 없도록 만든다. 게다가 강지원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박민환(이이경 분)과 연인 사이다. 그 말은 친구인 척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정수민(송하윤 분)과 박민환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아직 그에게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생 2회차이지만 회사 생활은 녹록지 않다. 10년 전 강지원이 위암을 얻게 된 계기였던 직장 내 괴롭힘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강지원의 밀키트 기획안은 왕흥인 상무(정재성 분)를 등에 업은 김경욱 과장(김중희 분)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심지어 강지원의 말 한마디를 꼬투리 잡아 기획안에서 강지원을 완전 배제하려 한다. 그리고 친구 정수민은 거기에 이미 숟가락을 얹은 상태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유지혁은 도와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했던 삶이 자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뼈저리게 깨닫은 지원은 다짐한다. 이 위기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지만 상무까지 나선 기획안을 어떻게 뒤집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때 유지혁이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간다. 유도 도장이다. 도복을 갈아입은 지원은 지혁의 대학 후배와 함께 대련을 하고, 그 과정에서 지혁은 유도라는 운동을 통해 지원에게 상황을 풀 열쇠를 제시하고자 한다.
 
'일단 매트 위에 올라서서 상대를 마주 보는 것.'

이렇게 지혁의 유도수업이 시작된다. 자신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힘 조절이 필요하다는 그의 가르침 덕분일까. 지원은 있는 힘껏 기압을 내지르며 상대방을 뒤집는다. 지혁마저도 매트 위에 눕혀버린다. 

스스로 해냈기에 더 통쾌한 성취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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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의 대련을 통해 강지원은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밀키트 프로젝트에서 한줄기 희망을 찾아낸다. 강지원에겐 김경욱 과장과 왕흥인 상무에게는 없는, 10년의 시간을 거스른 혜안이 있다. 왕흥인 상무가 비행기 난동 사건으로 물의를 빚게 된다는 걸 알고 있는 강지원은 왕흥인을 외려 밀키트 기획안에서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는 상황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밀키트 기획안의 진짜 주인공임을 널리 알린다. 

결국 강지원이 스스로 밀키트 기획안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시원하게 활짝 웃으며 강지원은 스스로의 성취를 기뻐한다. 

밀키트 기획안에서 배제된 후 정수민은 강지원을 위로한답시고 말한다.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너의 능력을 알아줄 날이 올 거라고. 그러면서 자신은 과장을 이용해 프로젝트에 이름만 올리고 정직원 자리를 얻으려 한다. 그런 정수민에게 강지원은 10년 전과 다르게 똑부러지게 말한다. 이제 더는 언젠가 누가 알아줄 날을 기다리며 살고 싶지 않다고. 지금 나의 능력은 지금 인정받고 싶다고. 이렇게 강지원은 또 한 걸음 자기다움을 향해 나아간다. 

남편 박민환과 친구 정수민 때문에 시한부 삶조차 다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강지원. 10년 전으로 돌아왔지만, 인생 2회차는 여전히 쉽지 않다. 손찌검까지 하려는 박민환의 폭력성과 안하무인의 태도, 사사건건 친구라며 강지원을 자기 손아귀 안에 두려는 정수민의 '가스라이팅' 앞에 강지원은 운신의 폭이 좁았다.

드라마는 그렇게 이전의 관계와 상황 속에 던져진 강지원이 스스로 자기를 찾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 여정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여성의 주체적인 삶의 의미를 짚는다. 밀키트 사업에서 알 수 있듯, 강지원은 어떻게든 스스로 그 상황을 헤쳐나가고자 애쓴다. 왕흥인 상무와 김경욱 과장을 한꺼번에 보내버리는 통쾌한 역전을 통해 강지원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나간다. 유지혁이 그를 도왔다면 그토록 통쾌했을까.

이전의 강지원은 그러지 못했다. 남편도, 친구도 문제가 있었지만 이 모든 관계들에 있어 그는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주장하려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밀키트 기획안을 빼앗겨도, 남편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시 태어난 강지원에게 주어진 진짜 미션은 남편과 친구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호시탐탐 그의 것을 노리는 정수민은 강지원과 대조된다. 자신의 능력으로 밀키트 기획안을 만든 강지원과 달리, 정수민은 강지원의 기획안이 좋다는 걸 알고 이를 빼앗으려 한다. 지원의 남편도 마찬가지다. 강지원이 만난 남자 중 가장 괜찮은 남자여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허우대도 멀쩡하다는 이유로 정수민은 박민환마저 빼앗고 싶어 한다.

강지원이 자아찾기를 하고 있는 반면 정수민은 애초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가 가진, 그럴듯한 뭔가를 탐하는 욕망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강지원의 진정한 자아찾기와 대조적으로 '자아'가 없는 정수민의 열등감이 빚어내는 파멸이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되었다.
냐남편과결혼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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