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머니"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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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실제로는 불과 한 계절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담았지만 여러 군상들의 사연을 꾹꾹 눌러 담다 보니 두 시간 가까운 분량의 영화를 전부 소화하고 나면 몇 년 치 시간대를 압축해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실시간 주식투자 인터넷 방송을 보고 있자면 시간의 흐름이 평상시보다 두세 배는 가속화되는 기분인데 이 영화가 딱 그렇다. (언론 검색하면 쉽게 파악이 가능한) 결말까지 확인하고 나면 영화가 다루는 소재가 큰 사건은 큰 사건이 맞구나 하는 인식에 별 이견은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남는 건 영화의 중심축인 게임스탑 사태를 어떤 인식과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이다. 해당 사건은 국내 언론 보도에서도 각 매체의 시각에 따라 천차만별 아주 상이한 결로 다뤄졌었다. 매체 간 보도의 결정적 차이는 개별 매체의 평소 정치경제적 좌표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해당 사태에 대한 해석이 민감한 사회적 기준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좌우/보수-진보 구도로 동일한 사안도 극단적으로 다르게 해석하는 국내 언론들의 평소 풍경을 떠올리면 익숙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덤 머니>는 원작 논픽션이 별도로 존재한다. 페이스북(현 '메타')의 탄생과정을 담아낸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 원작자이기도 한 '벤 메즈리치'의 <안티소셜 네트워크>다. (국내에는 미 출간) 원작자는 게임스탑 사태를 단순한 우발적 사건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겉으로는 뜻밖의 돌출로 여겨지는 해당 사안이 21세기 미국 현대사에서 기원한 필연적 상황이란 결론으로 게임스탑 사태를 해석하는 기조를 확실히 견지한다. 물론 거대한 사건이 무 자르듯 단일한 목적과 기획으로 진행되었을 리 없지만, 굵직한 줄기에 대한 영화의 입장은 명확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다들 집 안에 숨어있던 시기에 휴업이나 실직으로 딱히 할 일도 없고, 재해지원금 등 발생한 약간의 현금 수입 덕분에 너나 할 것 없이 주식투자에 뛰어들다 생긴 일일 뿐이라느니, 그런 무정형의 개인들이 우수수 군중심리로 몰려들어 비이성적인 투자에 '레밍' 무리처럼 뛰어든 기현상일 뿐이라는 등 게임스탑 사건을 축소하려는 보수매체의 보도는 (기존 금융계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명백하게 의도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덤 머니>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보수언론들이 애써 치부하고 유도하려는 판단과는 무척 다른 입장을 채택한 결과물이다. 그저 개인투자자들이 비합리적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대응을 저질렀고 이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일어난 예외적 사건사고에 불과했다는 축소 지향과는 확연히 선을 긋는, '집단지성'의 발현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는 서술을 취한다. 그런 원작과 영화의 공통 기조는 국내 보수언론의 기본적인 인식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온라인 공간에서 재현된 월가 점령투쟁과 그 주역들
영화에서 가장 공감대를 얻을만한 지점은 함께 '봉기'에 참여한 '덤 머니'들 각자의 사정일 테다. 개인투자자의 개별 사연은 너무나 다양하다. 학자금 대출로 빚을 잔뜩 짊어진 대학생, 게임스탑 매장에서 일하는 히스패닉 이민자 청년, 코로나 방어에 선봉이 되었지만 고작 6백 달러 지원수당 때문에 자녀들 이빨 교정도 못 시켜주는 간호사들의 처지는 관객이 쉽게 공감할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개인투자자들 집단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해볼 수 있다. 두 부류 공히 2008년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의 직간접적 피해를 겪은 공통점을 공유하는 세력이란 점에선 동질성을 지니고 있긴 하다. 30대 이상 중년층은 그 시기에 실직을 당했거나 취업난을 겪으며 고생을 잔뜩 치른 이들이다. (그들의 자녀이자 후속세대인) 20대 청년층은 해당시기 불황의 여파로 인해 가족이 붕괴되었거나 경제적으로 열악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정작 금융위기의 주범이라 할 월가의 금융자본은 2008년 당시 제대로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부도와 파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모럴 해저드' 자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으로 오히려 돈 잔치를 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런 지경이었으니 월가 점령운동이 일어나지 않고 배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의 기억과 빈곤의 분노를 공통의 체험으로 간직한 이들이 또다시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2008년과 2021년 상황에 차이가 있다면 오프라인 시위와 물리적 점거투쟁에서 온라인 공동행동으로 방식과 양태가 변했다는 것 정도다.
결국 그때의 원한을 기억하던 이들이 10여 년 후까지 단죄는커녕 일체의 반성 없이 부를 쌓아가는 헤지펀드 투기세력과 일전을 벌이려 도전한 게 종래 주식시장 상식을 초월한 '존버'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덤 머니>의 시각인 셈이다.
효과적인 연출로 극명하게 드러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