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마에스트라>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TV조선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 속 주인공들
tvN/TV조선
뭐니 뭐니 해도 드라마에 '바람'만 한 MSG를 찾기는 어렵다. 갈등 상황에 자극적인 대사로 인해 시청률 상승은 물론, 오래도록 회자하는 명장면이 탄생하기도 한다.
2007년 방영된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불륜 커플에게 "너 교양 있어? 교양 있는 게 그러고 살아?"라며 망신을 주는 배우 하유미의 대사는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2020년 방영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을 변명하는 남자의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 역시 당시 최고의 유행어로 자리 잡기도 했다.
불륜, 바람이라는 소재는 드라마 전개에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한 주인공은 각성하게 되고, 복수로 향하는 서사는 시청자가 주인공에게 이입하며 그를 응원하게 만든다. 드라마에 너무 몰입한 어르신들이 불륜을 저지르는 연기를 했을 뿐인 배우에게 욕을 하거나 손가락질을 한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방송가에 횡행할 정도다.
2024년의 드라마 판에도 어김없이 '불륜'이 등장했다. 지난해 12월 2일 첫 방송된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부터, tvN 드라마 <마에스트라>, TV조선 <나의 해피엔드>, 지난 1일 첫 방송된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이르기까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이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모두 상대의 불륜 또는 바람을 겪는다.
자세히 보면 다른 콘셉트와 줄거리의 드라마지만 분명 유사점이 있다. 주인공에게 남자친구, 남편의 바람은 이제 당하고만 살지는 않겠다는 각성 수단이 된다. 또한 여성 주인공의 곁에는 그를 돕는 남성 조력자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시련 끝에 성장한다. 같은 소재를 다뤘지만, 결코 양산형 드라마가 아닌 이야기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드라마들 속에 모두 불륜, 바람 소재가 있다니. 이 드라마들은 시청자의 어떤 욕망을 짚어내고 있을까.
'네가 감히 날 버려? 난 신경 안 써'
해당 드라마에서 불륜은 중요한 사건이지만, 물론 서사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극적인 감정을 촉발하기 위한 단기적인 매개에 가깝다. 그래서 드라마는 불륜이 주는 감정적 타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성 캐릭터의 설정을 양방향으로 구현한다. 모 아니면 도, 너무 순애보이거나 나쁜 남자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바람을 피운 그들을 더욱 괘씸하게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마에스트라> <나의 해피엔드> 속 남편들은 아내에게 헌신적으로 내조하는 유형이다. 자신만 사랑하는 줄 알았던 남편의 불륜을 까맣게 몰랐던 주인공들은 더욱 큰 배신감을 느낀다. 반면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남편 박민환(이이경 분)은 툭하면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걷어차는 폭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그의 불륜은 오히려 예상 가능한 수순이 된다. 불륜을 목격한 주인공 강지원(박민영 분)은 심지어 남편에게 살해 당하고, 두 번째 삶을 얻는다. 이제 각성하고 복수할 기회가 온 것이다.
<마에스트라> 속 차세음은 전 세계 5%뿐인 마에스트라(여성 지휘자)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인간 차세음의 삶은 외롭다. 엄마가 앓았던 레밍턴 병(가상의 희귀병)이 유전될까 두려워하며 가족을 철저히 외면하고, 엄마와 얽힌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외도를 저지른 남편이 자신의 병을 약점으로 쥐고 협박하자, 세음은 결단을 내린다.
직접 언론에 나서 자신에게 레밍턴 병이 유전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오랫동안 외면했던 엄마와 재회하며 화해의 눈물을 흘린다. 알 수 없는 신체 통증으로 두려움에 떨 때 오케스트라를 지킨 건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단원들이다. 남편의 불륜을 통해 세음은 트라우마와 직면하고, 세상에 알리며 극복하게 되고 새로운 조력자인 단원들과의 신뢰 관계를 얻게 된다.
불륜으로 성장한 건 차세음만이 아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강지원은 뜻하지 않게 10년 전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얻게 되고, 복수를 위해 자기 삶을 처음부터 다시 가꾸려 한다. 불합리한 상사에게 동료들과 함께 대응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동창들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는 등 내적 성장을 겪는다. 다시 태어난 강지원은 절친한 친구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남편의 불륜 상대였던 정수민(송하윤 분)에게도 예전처럼 휘둘리지 않고 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해당 드라마는 불륜이 주인공에게 남긴 상처와 배신감보다 이를 통해 주인공이 내리는 선택과 결정에 집중한다. 주인공은 상대방의 불륜을 통해 개인적인 상처를 극복하며 동시에 남성 캐릭터와의 부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물들과 연결된다. 위기보다 기회에 가까운 불륜,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걸림돌보단 디딤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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