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평 작곡가는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총살 당함"이라고 적힌 이기복자(여, 2세)의 비문을 보고 한참을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지 못하다가 그를 위한 곡을 쓰고겠노라 마음 먹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장태평
- 제주도 '너븐숭이'에 방문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현장에서 어떤 감정에 사로 잡혔나요?
"제주4·3 유적지에 처음 방문한 것은 2016년이며, 2019년 1월은 세 번째입니다.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라는 물음을 통해 제주도에 재방문했고, '너븐숭이 4·3기념관'에 가서 애기돌무덤을 보았습니다. "1949년 1월 17일 북촌교 인근 밭에서 총살 당함"이라고 적힌 이기복자(여, 2세)의 비문을 보고 한참을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지 못하다가 그를 위한 곡을 쓰고겠노라 마음 먹었습니다."
- 작품을 완성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주 관광지들을 방문하여 고개를 돌려보면 제주4·3 유적지가 있습니다. '너븐숭이'에도 조천읍 북촌리의 아름다운 들판에 20여 기의 애기돌무덤이 있고, 주변에는 수선화가 바닷바람에 흔들리며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한참 머무르며 한편의 선율을 노래하며 적어두었습니다. 두 달 뒤에 새로운 관현악곡을 스케치하면서 하고 싶었던 주제는 하나입니다. 작품을 위해 제주도의 여러 소리들을 조사하던 중에 '제주 무당자장가'를 듣게 되었고 곡조가 특별하게 다가와 채보하고 보니 애기돌무덤 앞에서 떠올렸던 선율과 음구조가 닮아있더라고요. 이에 어떤 비논리적 확신으로 두 가지 닮아있는 선율을 모티브로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 아창제 15주년 기념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창작관현악은 수십년 동안의 역사에서 여러 노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현악에 대한 인식부터 지원형태와 규모, 작품의 질적 향상 등 개선되고 확대되어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창제의 가치와 의미는 연주를 맡은 지휘자와 연주단체는 물론이며 관현악을 애정하는 청중을 비롯하여 모든 음악계가 주목하고 집중하는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무대이며 선정되는 작곡가에게는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특별한 연주회에 기억되고 싶은 작품이 선정되어서 대단히 감격스럽습니다. 마주하기 어려운 아픈 역사를 작품으로 함께 기억하며 갈등과 반목에서 벗어나 맑게 웃는 내일을 희망할 수 있는 무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5년 전 무대와 달라진 점과 기대할 점이 있을까요?
"제11회 아창제에서 선정된 이후로 12회부터 14회까지 3회에 걸쳐 아창제 국악부문의 연주를 제가 부지휘자로 있던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에서 맡으면서 생생하게 현장을 함께 해왔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등단하는 작곡가들과 함께 음악적으로도 전에 없던 인상적인 시도가 나타났습니다. 아창제는 작곡가의 작품이 선정되며 주목받게 되지만 지휘자를 비롯하여 관현악의 모든 파트가 악보를 통하여 작품과 대화하고 무대에 오르기까지 치열한 연습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15주년 기념 특별 연주회는 제11회 아창제에서 <너븐숭이> 초연을 연주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다시 맡아 김성국의 지휘로 함께 합니다. 김성국 지휘자는 2023년 6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2023 관현악시리즈 전통과 실험-풍물' 공연에서 위촉된 저의 관현악 작품 <춤꽃>의 지휘를 맡아 탁월한 해석과 뛰어난 완성도의 연주로 작곡가에게 감격스런 무대를 선사해 준 바 있습니다. 하나의 관현악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초연된 이후로 수십 번의 재연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하니 매번 높은 수준의 연주를 보여주는 김성국 지휘자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이번 연주는 초연 때와 또 다른 기대와 설렘이 있습니다."
- 2019년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셨는데, 앞으로의 활동도 궁금합니다.
"2020년부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서 무대 안팎으로 치열하게 열과 성을 다하여 책임을 다해왔고 이제 저에게는 잠시 숨표가 주어졌습니다. 창작자는 작품을 통하여 죽음과 부활을 거듭하며 끊임없는 내면의 성찰과 탐험을 거듭합니다. 작곡가로서 더디더라도 보다 솔직하면서도 성숙한 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 이 곡을 들을 청중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드립니다.
"반전(反戰)과 평화를 노래하고 한국 근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와도 같은 끔찍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품으로, 희생된 어린 영혼들과 그를 기억하는 이들을 함께 위로하고자 하는 진혼(鎭魂)의 성격을 띠고 있는 작품입니다. 거대한 감옥과도 같았던 해방공간 제주의 이야기와 희생 당한 어린 영혼을 잠시 마음에 담으며 감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