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함께 영화를 본 이들의 소감이 극단적으로 갈렸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기술적으로는 단연 최고였지만 내용 면에선 적잖이 아쉽다는 거다. 혹자는 2시간 반 동안 눈은 호강했지만, 가슴 한구석은 내내 허전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러닝타임 대부분을 해상 전투에 할애했다.
며칠 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처럼 이 작품 역시 '역사가 스포일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철수를 명하는 첫 장면과 이순신이 적의 총탄에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은 누구든 예측할 수 있다. 실제 역사로 치면, 그사이 석 달 동안 벌어진 일들을 어떻게 묘사하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영화에 등장한 실제 역사 인물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등 '옥에 티'가 없진 않지만, 스치듯 언급되어 딱히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삼척동자도 아는 역사를 소재로 한 만큼 되레 역사적 상상력의 부족이 아쉬울 따름이다.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려면 덜 알려진 역사일수록 유리한 법이다.
역사든 영화든 노량대첩의 주인공은 네 사람이다. '성웅' 이순신과 적군에 매수된 명군의 도독 진린, 퇴로를 열라는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 그리고 고립된 고니시를 구하기 위해 출병한 시마즈 요시히로. 그들이 어떻게 손잡고, 의심하고, 갈등을 빚고, 전투를 벌였는지는 우리에겐 이미 상식이다.
보탤 것도, 덜어낼 것도 없어서였을까. 1598년 음력 11월 19일 새벽에 벌어진 이순신의 최대이자 최후의 전투를 실감 나게 재현하는 데에 모든 기술적 역량을 쏟아부은 느낌이다. 북소리와 함께 자막이 올라갈 때, 노량대첩의 혁혁한 전과를 소개하는 대목이 이를 짐작하게 한다.
'죽음의 바다'라는 영화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노량대첩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틀어 가장 참혹했던 전투였다. 이 싸움을 끝으로 7년간의 길고 길었던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더욱이 이순신이 이 전투에서 최후를 맞았으니, 역사 영화에는 더 없이 맞춤한 소재이긴 하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했다. 완벽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동원해 박수갈채를 받고 있지만, 동시에 '내러티브'의 힘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혹평이 따라붙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심지어 돌고 돌아 '국뽕'이라는 당의정을 입혔다는 조롱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셋째 아들 이면의 죽음을 결코 잊지 못하는 아비의 복수심이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인 양 강조되는 대목은 적이 당혹스럽다. 적들을 열도 끝까지 쫓아가 항복을 받아내야 하는 이유가 다시는 침략할 마음을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이순신의 포효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엮어낸 것 치곤 너무 어색하다.
차라리 수군통제사로서, 칠천량 전투 등에서 전사한 숱한 부하 장수들의 원한을 갚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것만 강조됐더라면 더 나았을 성싶다. 이순신이 출전을 앞두고 전사자 명부를 태우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그들을 향한 미안함과 결연한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어서다.
특히 이 장면에선 이 영화가 김한민 감독의 전작인 영화 <명량>과 <한산 : 용의 출현>에 이은 작품임을 암시한다. 전작에서 등장한 이순신의 휘하 장수 어영담(안성기 분)과 이억기(공명 분)가 클로즈업되면서 관객들의 기억을 소환한다. 물론, 전작을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법도 하다.
역사 교사로서, 처음엔 영화 <노량>이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은근히 기대한 게 있다. 모두가 아는 이순신의 최후 대신, 그가 굳이 적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불퇴전에 임한 나름의 이유를 '팩션'으로 그려낼 줄 알았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은 아무래도 식상하다.
흠 잡을 때 없는 해상전투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