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고려 거란 전쟁> 11화 관련 이미지.
KBS2
이런 모습이 지난 16일 방송된 <고려 거란 전쟁> 제11회의 14분경에 잠시 묘사됐다. 길거리에 모인 백성들이 "힘을 모아 싸웁시다!", "황제를 위하여 싸웁시다!"라고 외치는 장면에 뒤이어, 불상의 모습과 함께 승려들이 무기를 분배받는 장면이 나왔다. 연로한 스님은 기도를 올리고 승려들은 무기를 들고 떼를 지어 몰려나갔다.
이 장면을 연상케 하는 역사 기록이 <고려사>의 축약판 겸 보충판인 <고려사절요>에 나온다. <고려 거란 전쟁>에 등장하는 지채문 장군(한재영 분)과 탁사정 장군(조상기 분)이 <고려사절요> 현종 편에 등장한다.
이 책은 음력으로 현종 1년 12월 12일(1011년 1월 18일)에 있었던 지채문의 활동을 서술하는 대목에서 "병진일에 마침내 사정 및 승려 법언과 함께 병력 9천을 인솔하고 임원역 남쪽에서 맞서 싸워 3천여 급을 참수했다"라며 "법언은 죽었다"라고 기술한다.
지채문이 탁사정 및 법언과 함께 9천 병력을 거느리고 서경 임원역에서 거란군 3천 명을 전사시켰다고 했다. 승려 법언이 두 명의 관군 장수와 대등하게 나열된 것은 법언 역시 지휘관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9천 병력 중 상당부분이 법언 휘하의 승군이었음을 추론케 한다.
승려들의 활약상은 이 정도에 국한되지 않았다. 사찰이 아닌 민가에 거주하는 이른바 재가화상(在家和尙)들도 거란과의 전투에 뛰어들었다. 1123년에 송나라 사신단의 일원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은 <고려도경>이라는 보고서에서 "이전에 거란이 고려에 패배한 것도 바로 이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3차례에 걸친 요나라의 침공이 무위로 끝난 데는 승군의 역할도 컸던 것이다.
국방 문제를 다루는 <고려사> 병지(兵志)는 제15대 주상인 숙종(재위 1095~1105) 때의 일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국가가 군대를 동원할 때마다 사찰 승려들을 징발하여 정부군에 편입시켰다고 설명한다. 평소에는 승려로, 전시에는 군인으로 자동 변신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마련됐던 것이다. 군대 가기 싫어 사찰로 도망가는 일이 용이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사례다.
역사학자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재가화상을 고구려판 화랑인 조의선인과 함께 서술한 뒤 "신수두 제단을 지키는 흑의 무사"에서 승군이 기원했다고 설명한다. 흑색 복장을 하고 고조선의 최고 제단인 수두(소도)를 지키던 무사들이 승군의 초창기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전통은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의 배경인 임진왜란 때도 이어졌다. 이순신과 권율 같은 관군 사령관뿐 아니라 사명대사나 서산대사 같은 승병장들도 있었기에, 조선은 이 전쟁에서 국토를 지킬 수 있었다.
승군의 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