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스틸 사진
민아영감독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오전 8시 출근길의 붐비는 지하철을 비집고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하자 한 시민이 버럭 고함을 지른다. 지하철이 멈춰 출근이 늦어진 시민들은 화가 나있다. 이들은 장애인들을 향해 '우리'에게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그가 말하는 '우리'에는 장애인이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하러 일찍 지하철역에 모인 장애인들도 더위와 추위를 뚫고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결코 '우리'라는 단어를 장애인들에게 내주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는 장애인들 역시 '우리'라고 이야기한다. 영화에는 유난히 '우리'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회는 그렇게 우리를 버리고도 충분히 가능한 세상이구나라고 느꼈어요." 장애인을 태우지 않고도 지하철은 출근길을 달린다.
2년 넘게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비롯해 장애인 운동 현장에 카메라를 비춘 민아영 감독을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만났다. 영화를 만든 민아영 감독은 최근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가 상영됐던 서울독립영화제(8일 폐막)를 시작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새로운 관객을 만나고 있어요"
- 반갑습니다, 민아영 감독님. 지난 주말에는 영화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를 들고 경북 안동의 독립영화관 중앙시네마에서 관객들을 만났다고 들었어요.
"12월 초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로 GV(관객과의 대화)를 두 차례 갖고 이번에는 안동에 가서 관객들을 만났어요. 장애인 운동을 하는 당사자들이 아니고 정말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가 궁금해서 영화를 보러오신 분들이었어요. 사실 그동안 패배적인 생각도 없지 않았거든요. 작년 한 해 장애 운동을 끊임없이 하고도 제대로 해결된 게 하나도 없어요. 지하철은 무정차로 역을 통과해버리고 정치인들은 나몰라라 하거나 강경대응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요. 시민들의 관심 역시 작년에 비해 많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었는데 관객들이 여전히 관심이 있는데 다만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 영화를 만들어서 참 다행이었어요."
- 시민들을 지하철 안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만나는 건 아예 다른 방식의 만남이고, 또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네요.
"어제 영화관에서 만난 분은 작년에 전장연에 대한 비방이 많이 들릴 때 자기가 전장연 후원회원이고 장애인 인권 운동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그런 분위기에서 장애인 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게 되게 무서웠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거든요. 털어놓을 곳이 없잖아요.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나 부모님이 있지만 비장애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요."
- 영화를 보니 물론 지하철에서 욕을 하는 시민들도 있지만 반대로 투쟁을 응원하는 시민들도 상당히 많더라고요. 2년 넘게 촬영하면서 지켜본 지하철 안에서 실제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런데 그 응원하는 시민들의 비중이 실제로 영화보다 더 많았어요. 촬영 순간에 카메라로 그걸 잡지 못해서 그렇지, 지하철에서 만난 시민들이 많이들 응원해주셨어요. '응원합니다!'라고 외치면서 열차서 내리기도 하시고요. 응원하는 내용의 쪽지를 조용히 손에 쥐어주면서 '언제라도 지하철에서 만나면 꼭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라고도 하세요. 그런데 그건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 다 화를 내거나 침묵하는 상황에서 소리를 내며 응원하는 것이니까요.
"계속 비난을 듣다 보면 사회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쉽잖아요. 그런데 그런 지지와 응원을 한 번 받을 때는 불신이 사그라드는 게 또 사람 마음이더라고요. 엄혹한 현장이었지만 어떻게든 응원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멀리서 연대하러 와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전체적으로는 응원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투쟁 방식에 대해 부정하더라도 전장연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찬성한다고 말씀을 해주는 분들도 계셨어요.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민들이 방식과 내용을 분리해서 정확하게 따져보기도 한다고 느꼈죠."
- 영화에는 '우리'라는 표현이 되게 많이 나와요. 한 시민이 지하철에서 '우리한테 왜 이러느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요. 반면 박경석 대표는 '이 사회는 우리를 버리고도 가능한 세상이구나'라고 말하죠.
"맞아요. 박경석 대표의 발언은 정말 모든 걸 다 통과한 뒤에 나올 수 있는 말이죠. 한 시민 분이 말씀하신 '우리'라는 건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겠죠. 더 정확하게는 비장애인이면서 그 시간에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이겠죠. 박경석 대표가 말하는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능력이 없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모든 이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 말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이냐, '사회 구성원'이라는 건 도대체 누구냐는 질문으로 느껴졌거든요.
어떤 시민이 '장애가 벼슬이냐'라고 하는데 이형숙 대표님이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세요?'라고 되묻거든요. 그 시민이 살아왔던 경험과는 너무나 다른 경험을 갖고 살아온 우리인 거죠. 장애를 갖는 순간부터 보편적이라고 여겨지는 경험을 갖지 않는데 비장애인들은 이 삶을 구체적으로 모르거든요."
"울면서 편집한 영화... 다음에는 노들야학 담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