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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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12.12가 우리 현대사에 미친 해악을 아이들도 분명히 알게 됐다. 교과서의 손 빠진 부분을 영화가 너끈히 메꿔주었다. 아이들은 10.26과 5.18, 나아가 6월 민주항쟁 사이의 인과관계가 이로써 완벽하게 설명됐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관람 후 아이들이 남긴 소감 중 인상적인 몇 가지만 소개한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대사 한마디에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들렸다."
"전두환이 현실에선 이겼지만, 역사에선 졌다.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영화다."
"전두환과 노태우 말고도 직속상관을 배반하고 반란군 편에 선 실존 인물들을 기록으로 남겨 반드시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반란군에 맞서 싸운 이들의 이름을 되새기는 게 먼저다. 그들에 대한 예우가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유능한 적군'보다 '무능한 아군'이 더 무섭다. 최규하 대통령과 노재현 국방부 장관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이름도 기억해야 한다."
"반란군의 승리를 넋 놓고 지켜보고만 있던 시민들의 책임도 없지 않아 보인다. 영화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반란군과 한통속이 되어 시민들의 눈을 가린 언론사도 있었을 것 같다."
아이들의 묵직한 소감을 읽노라니, 기말고사도 끝났으니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단체 관람하면 좋겠다 싶다. 중고등학생 정도면 영화 속 허구와 사실을 충분히 구별해낼 수 있을뿐더러, 그것들을 소재 삼아 별도의 역사 수업을 꾸릴 수도 있다. 며칠 전이 12월 12일이었으니, 계기 교육 자료로도 시의적절하다. 역사 교사로서, 무척 고마운 영화다.
"영화의 첫 장면에 나오는 것처럼, 12.12가 10.26에서 비롯됐잖아요. 그럼 10.26이 일어난 직접적 원인은 뭐죠?"
한 아이의 돌발 질문에 무릎을 쳤다. 그는 역사란 끊임없는 인과관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저절로 깨닫게 된 셈이다. 마치 블록 조립하듯 복선과 인과관계를 따져보려는 호기심은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만의 묘미다. 답변 대신 스스로 답을 찾아보도록 과제로 내주었다. 물론, 10.26 열흘 전에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이 맨 먼저 거론될 테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사회과 교사들끼리 경남 창원(마산) 일대를 답사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학교 내 교사의 교육력 제고를 위한 전문적 학습 공동체 프로그램의 하나로, 기말고사가 끝난 주말인 16일에 떠나기로 정해졌다. 그런데, 소식이 퍼지자 함께 가고 싶다는 아이들이 순식간에 줄을 섰다. 이 역시 영화 <서울의 봄>이 퍼트린 '선한 영향력'이다.
사족. 단체 관람 계획을 '좌빨 교육'으로 몰아세운 일부 극우 유튜버들의 망동을 굳이 여기서 문제 삼고 싶진 않다. 다만, 황당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행태에 주눅이 들어 멀쩡한 계획을 취소한 해당 학교의 소심함이 안타깝다. 학교의 그 많은 교사 중에 그들의 몰상식한 주장에 당당히 맞선 이가 없었다고 생각하면 같은 교사로서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만약 12.12 당시 신군부의 만행을 가르치는 게 '좌빨 교육'이라면, 엄혹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이들이 '좌익 빨갱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수많은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모독이자,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는 짓이다. 고작 악다구니 민원이 두려워 아이들 앞에서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곳을 더는 학교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