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툭 내던지곤 한다. 그 일이 자신에게 직접 연관되지 않을 때는 어렵지 않게 나올법한 직언이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그 당사자라면 과연 그리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동일한 담화라도 저 간단한 문장은 수백 수천가지 결로 갈라지고 매 건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질 테다. 그 말을 던지는 이와 듣게 되는 이의 상황, 표정, 상호관계, 주변 관전자, 심지어 날씨나 소음까지 관련되어 동일한 문장이 극과 극의 반응으로 수렴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저 문장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내용 자체로는 틀린 게 아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인 의견이라는 점에 큰 반대는 없을 게다. 아무리 슬프고 사무치는 일이라도 결국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는 걸 모르는 이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혈관에 피가 흐르고 뇌에 기억을 가득 채운 존재다. 비극에 직면했을 때 심장이 부르르 떨리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게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 주변의 가까운 누군가를 영영 잃어버렸을 때 단번에 기계처럼 합리적 태도를 취한다면 주변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 십중팔구는 오싹한 소름을 느낄 테다.
 
인간이란 본래 그런 존재다. 그 간극에서 오는 소모가 아까울지언정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다만 안타까움에 위로와 도움을 전해야 할 뿐이다. 그럼에도 결국 스스로 수렁을 헤치고 나와야만 한다. 전작 <홈리스>에 이어 임승현 감독이 선보인 신작 <물비늘>은 소중한 존재를 검푸른 물 안에 남겨둔 채 자신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강물을 수색하는 여성의 속사정
 
"물비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물비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든 나이든 여성이 물안경을 쓴 채 얕은 강 속에서 무엇인가를 한참 찾고 있다. 강 상류에서 크록스 샌들 한 짝이 천천히 떠 내려와 작업에 몰두하던 여성의 몸에 부딪힌다. 화들짝 놀라서 샌들을 집어든 여성에게 자기 아이가 물놀이하다 벗겨졌다며 아이의 아버지가 샌들을 회수해간다. 멍하니 그 상황을 지나보낸 여성은 다시 혼자만의 수색작업에 몰두한다. 알고 보니 여성은 (지뢰제거작업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금속탐지기로 강바닥을 샅샅이 훑는 중이다. 한참 있다 물가로 올라온 여성에게 공사장 용역인부들이 시비조로 다가온다. 그들은 다리 공사를 위해 쌓아둔 자재와 장비가 자꾸 훼손된다며 사건에 대해 캐묻지만 여성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점점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마침 때 맞춰 도착한 경찰이 인부들에게 여성의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경찰관이 들려준 사연은 대강 이렇다. 1년 전 여성의 중학생 손녀 '수정'이 바로 이 강에서 래프팅을 하던 중 실종되었다. 다수의 사망자가 나온 큰 사건이기에 정황은 있지만 손녀는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시신이라도 건지기 위해 이 여성은 생업도 내팽개친 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손녀의 흔적을 찾는 중이라는 것. 여성의 자녀와 또래로 뵈는 경관은 물이 불어 위험하니 오늘은 그만하시라며 그를 타이른다. 집으로 태워주겠다며 상황을 무마하지만 덕담이랍시고 이제 그만 포기하라는 경찰의 한마디에 발끈한 여성은 거칠게 차에서 내린다. 우천 상황에서도 그는 다시 묵언 수행하듯 수색에 몰두한다.
 
그 여성. '예분'은 원래 염습 일을 해왔다. 동네의 유일한 장례식장을 오랜 고향친구 '옥임'과 함께 운영하던 중이지만 1년 전 사건 이후 문을 닫았다. 게다가 친구 옥임은 장기투병 중이다. 희망이라곤 없는 수색을 마치고 휑하니 텅 빈 식장 겸 거처로 돌아온 예분에게 옥임이 홀연히 등장한다. 퇴원 예정이라며, 하지만 병이 나은 게 아니라 전이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어 연명치료도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서로를 타박하며 센 척하지만 실은 피차 갑갑한 상황이다.
 
친구를 병원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옥임을 데리고 건물 바깥으로 나온 예분 앞에 손녀딸 또래의 여학생이 꾸벅 인사를 한다. 옥임의 손녀 '지윤'이다. 할머니들이 소꿉친구였던 것처럼 손녀들 역시 어릴 적부터 어울리던 친구 사이다. 하지만 1년 전 수정의 실종(사실상 사망 확정상태) 이후로 지윤은 예분 앞에 나서지 않는 중이었다. 예분은 지윤이 수정의 마지막 날 행적에 대해 자신이 모르는 실마리를 쥐고 있을 거라 단정하고 캐묻기 시작했다. 옥임은 손녀를 보호하고자 둘이 서로 마주치지 못하게 막아섰다. 하지만 옥임이 건강을 해치면서 마침내 그 보호막이 뚫린 격이다. 할머니가 시한부 인생인 상황에서 지윤은 달리 의지할 곳이 없다.
 
오월동주 격으로 동거하는 두 여성 사이의 커지는 균열
 
"물비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물비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결국 옥임은 머지않아 죽음을 맞는다. 옥임에겐 아들(이자 지윤의 아빠)이 있지만 이미 몇 년 째 도박에 빠져 외지로 떠도는 중이다. 지윤이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 이유다. 그런 처지이다 보니 지윤이 할머니 장례를 치르려 해도 당장 보호자도 없는 실정이다. 예분은 불편한 마음을 한 구석에 감춘 채 친구의 손녀를 일단 당분간 자신이 데리고 있기로 한다. 물론 그저 측은지심만은 아니다. 예분은 진상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수정의 죽음 관련 지윤이 일말의 비밀을 품고 있으리란 심증을 놓지 않던 참이다. 지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그동안 옥임이 손녀를 보호하는 바람에 캐묻지 못했던 실체에 접근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지윤 역시 흔쾌히 예분의 둥지로 들어온 건 아니다. 지윤에게도 절박한 속사정이 있다. 그 역시 (예분처럼) 단짝친구 수정의 죽음 이후 온전한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수영에 재능이 있다고 인정받은 지윤은 수영부에서 연습에 매진하는 중이다. 도내 대회에서 선발로 실적을 올리면 체육특기생 진학(을 통한 자립)이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동기들에 비해 성장하지 않는 작은 체구는 점점 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지윤은 어떻게든 현실의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 하지만 중학생에 불과한 그의 시야 안에서 수영 외엔 길이 통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해결책을 강구하기엔 아직 너무나 어리고 막막한 지윤이다. 시골 동네 인심도 이제 과거와는 다르다. 도박에 미쳐 연락도 안 되는 아빠다. 엄마라 할 존재도 딱히 지윤을 보호할 생각이나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건 관객도 쉽게 짐작 가능한 경우다. 남보다 못한 육친들보다는 어릴 적부터 한 가족처럼 지내왔던 예분이 더 익숙할 수밖에 없다. 당장 보호시설에 수용되는 일을 피하려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한다. 하필 그 대상이 자신에게 의혹을 품은 예분일지라도.
 
각자의 답답한 상황에 속박된 둘은 서로 다른 계산속에 불편함을 감춘 채 동거생활을 이어간다. 예분은 그나마 지윤보다는 나은 구석이 있다. (수정의 엄마인) 딸 '현경'이 있다. 하지만 둘은 수정의 죽음 이후 연락을 거의 않고 지내는 상태다. 현경과 재혼한 새 사위가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자는 제안을 한다. 예분도 그래야 하나 싶다. 하지만 지윤은 연락도 끊긴 친부를 제외하면 세상천지 의지할 곳이 없는 고립무원 신세다. 지윤은 점점 더 코너로 몰린다. 60대와 10대 여성 둘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동거생활에 균열이 가속화된다. 둘은 1년 전 실종사건을 둘러싼 긴장과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기묘한 효용이 교차되는 가운데 아슬아슬한 상황을 이어간다. 마침내 감춰진 진실의 편린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독립영화답게, 유행하는 경향을 재조합하다
 
"물비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물비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물비늘>은 이야기 재료로 솜씨 좋게 몇 개의 굵직한 선들을 교차시켜낸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진 않아도 드물지 않게 접할 번한 타인들의 소소한 비극을 설정한다. 그리고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할 이들의 긴장과 갈등을 연료로 삼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손녀를 잃은 할머니 & 할머니를 잃은 손녀의 조합, 게다가 상대가 손녀의 죽음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의혹을 품은 할머니 vs 손녀의 모든 것을 꿰고 있던 친구의 손녀라는 구도는 듣기만 해도 숨 막힐 것 같은 팽팽한 긴장을 끌어낸다. 1년간 쫓고 쫓기다 결국 외나무다리에서 대면하고야 만 두 사람의 운명이 과연 어떤 귀결을 맞이할까? <물비늘> 관람을 선택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일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스릴러 구도로는 모자라다고 느꼈는지 몇 가지 세팅을 더한다. 제작진은 추가적으로 이 여성들의 평범치 않은 관계와 조건에다 흥미로운 쟁점들을 몇 가지 덧붙이려 한다. 특히 일종의 사회학적 고려가 인상적이다. 요 근래 한국독립영화에서 일정한 경향성으로 드러나는 구도의 변주가 눈에 들어온다. <남매의 여름밤> (2019, 윤단비 감독)을 정점으로 하는 '노스텔지어'화된 유년기 조부모와의 기억이 그 대상이다. 독립영화 주요 창작 층인 20-30대가 현재 일상적으로 겪는 부모세대와의 갈등 대신 상대적으로 조(부)모 세대와 친화적인 풍경을 <물비늘>은 살짝 뒤틀린 방식으로 변주한다.
 
예분과 옥임, 둘 다 속된 말로 '자식농사'가 썩 신통치 않다. 예분의 딸은 이혼 후 어린 딸을 엄마에게 맡겨둔 채 도시에서 따로 살고, 옥임의 아들은 동네 소문난 노름꾼이다. 손녀 돌봄은 할머니들에게 전가되어 있다. 예분과 옥임 역시 남편의 존재감은 어디에도 엿보이지 않는다. 둘은 서로 의지하며 남들은 꺼릴법한 장례 일로 생존해왔다. 여성들끼리 남자들의 미덥지 않은 '전우애'를 뛰어넘는 끈끈한 유대감이 안 생길 수 없다. 둘의 손녀들 또한 할머니들의 관계를 뒤따르던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남자들의 부재는 자연스럽게 (영화 속 주요 관계를) 일종의 모계사회로 수렴시킨다.
 
그렇지만 제작진은 그런 설정에 기대어 판타지로 치우치는 우는 범하지 않는다. 낙관적으로 원시 유토피아를 형상화해 산적한 현실의 모순을 편의적으로 회피하는 안일함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2×2(예분-지윤-수정-옥임)로 다채로운 경우의 수를 선보이는 인물 간 구도는 각자에게, 그리고 서로를 위기로 몰아넣는 질료로 영화 속에서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물론 관객으로 하여금 (보여주지 않은 부분도) 상상하게 만든다. 생물학적 성 역할의 대체로 모순과 격차가 온전히 해소될 수 없다는 입증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런 예시장면들은 한국사회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온 시간과 처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무척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전형성을 탈피하되 영리하게 활용하는 변주가 돋보이다
 
"물비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물비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그 끝에서 대면하게 된 예분과 지윤의 관계는 단순한 보호자-피보호자 사이로 한정짓기 어렵다. 옥임과 지윤의 조합은 서로를 의지하며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아들 겸 아빠의 부재를 메워왔다. 반면에 예분과 수정의 관계는 친구네와 기본적인 구도 차이는 없지만 (회상 장면을 통해 드러나듯) 상대적으로 남성 우위 가부장제에 닮은꼴이다.

강요당한 가장 역할에 익숙해졌을 예분이 일상적 스트레스를 술에 의존하면서 보이는 폭력성은 역을 맡은 김자영 배우의 가공할 연기에 의해 폭발하듯 펼쳐진다. 예민한 관객이라면 견디기 쉽지 않을 정도다. 그런 억압된 폭력성은 손녀의 죽음에도 일정부분 관련이 있다. 그래서 1년 전 사건에 대해 예분은 남들에게, 심지어 수정의 엄마인 친딸에게도 내색하지도 못한 채 자기 탓으로 돌리며 후회와 가책에 시달리는 중이다.
 
집착적으로 손녀의 시신을 찾으려는 예분의 행위는 단지 모성애로만 좋게 봐줄 수 없다. 아무리 자책해봐야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 수정의 유해를 확인해야만 1년째 보이지 않는 밧줄로 꽁꽁 묶인 듯 지옥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의 속박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동아줄에 매달리는 심정이다. 본인 또한 그것이 부질없는 집착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이런 내적 속박은 예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예분이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그날의 진실 일부를 지윤은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지윤은 예분과 동일하게 죄의식에 매여 있다. 그렇기에 둘은 유일무이한 상호 이해에 도달할 가능성은 물론, 철천지원수처럼 수정의 죽음에 관한 책임을 전가시킬 원한의 가능성을 동시에 품은 채로 불안한 시간을 함께 한다.
 
예분과 지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지난 시간은 결코 인자롭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둘 모두 팔자가 사나운 편이다. 그나마 좀 더 많이 오래 산 예분이 현실적으로 생각만 좀 바꾼다면 우회할 경로가 있는 셈이다. 아직 사회적 관계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지윤은 정말 답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예분이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결이 아닌 봉합을 모색하기 시작하자 지윤의 위기감은 커져간다. 이중삼중으로 버림받을 것에 대한 공포라 해도 틀리지 않을 테다. 그래서 그저 처연한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둘 사이의 위계와 그로부터 촉발되는 긴장감이 조성되고, 이는 곧바로 영화의 예측 불가능한 흥미로 연결된다.
 
과연 이 두 사람이 어떤 결말을 함께 맞이할지 관객이 품게 되는 긴장감은, 감독의 전작 <홈리스>에서 사회적 주제의식과 함께 장르문법을 가미한 불안감 고조 및 공포영화 기법의 조합을 상기하게 만드는 몇몇 장면들로 한층 더 증폭된다. 순간순간 장르영화 전통에서 연상되는 찰나들 때문에 관객의 머릿속은 꽤나 복잡해질 법하다. 그래서 불길한 조짐에 몸서리치며 조마조마해할 순간이 제법 여러 번 등장하고 그때마다 '낚시'에 당하곤 한다. 여기에서 '물'이 갖는 다면적 특성과 관객이 품은 고정관념들이 큰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몰입을 지속시키는 용도 외에 본래의 전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고 <물비늘>의 서사는 궤도를 따라가며 막판 속도를 올린다.
 
보통의 비극을 극복해야 할 이들에게 전하는 위문편지
 
그 끝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대단원의 결말은 막상 접하고 나면 깜짝 놀랄 상황은 아닐 테다. 하지만 그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을 살핀다면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의 태도가 신중하고 사려 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테다. 특히 적지 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한국사회에서 몇 해마다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 지점에서 그렇다. 어떤 이는 이태원 참사를, 어떤 이는 세월호를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의 의도는 개별 사건에 대한 상기보다는 사건의 파장과 시의성을 초월해 비극에 처해 남은 이들이 겪는 상실감을 상기시키고 '고통을 당하는 이들의 연대'를 환기하는 데 방점이 명확하게 고정된다.
 
피할 길 없는 양자택일적 상황 - 이야기를 풀어가는 입장에선 전가의 보도와 같은 - 을 전제로 삼긴 했지만, 보는 이의 이목을 단번에 솔깃하게 만들기엔 다소 약해 보이던 설정은 꼼꼼하게 준비한 제작진의 수고와 이야기를 구현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로 완성된다. 강원도 정선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대도시와는 다른 시골의 동네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재현한다. 시골 인심 예전 같지 않다지만 그래도 동네 가가호호 사정 공유되는 '마을'에서만 가능한 표현과 순간들이 적지 않게 활용된다. 그저 기능적으로만 해당 지역이 소비되지 않는 안배다.
 
여기에 적절한 배우 캐스팅이 화룡점정을 이룬다. '명품 조연'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중심에서 끌고 가는 중년 여성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최근 독립영화판에서 '예분' 역 김재화 배우와 '옥임' 역 정애화 배우의 연기는 영화 속 소우주를 장악하고 지배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는 해당 배우들을 봐온 이들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귀결이지만 여기에 추가로 '지윤' 역 홍예서 배우의 활약이 영화 속 60대 - 10대 여성 간의 긴장이라는 저울을 평행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균형추가 된다. 수수해 보이지만 탄탄하게 '자율 주행'하는 극중 인물들의 변화를 그야말로 물 흐르듯 펼쳐 보인다. 그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건 배우 자신의 열연이기도 하지만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약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세팅한 제작진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런 요소들의 효과적 결합을 통해 영화는 숱한 상처와 상실감 속에 떠나보낸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되, 남은 이들의 새 출발을 격려하는 덕담으로 완성된다. 처음엔 둘 다 물을 두려워했던 주인공들 앞에 놓여 있는 도도한 강물을 건널 수 있도록 '망자'들이 손 흔들며 격려하는 마음이 찰나의 판타지 장면을 넘어 화면 가득 넘실거린다. <물비늘>은 도망치고 숨어버리고픈 아픈 진실과 대면해야만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당위 앞에서, 하지만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필요한 유예와 공감의 절실함을 고통당하는 이들의 맞잡은 손으로 풀어내는 세심한 마음이 밑바탕이 된 작업이다.
 
<작품정보>
 
물비늘 The Ripple
2022|한국|시크릿 드라마
2023.12.06. 개봉|99분|12세 관람가
감독 임승현
각본 임승현, 김승현
출연 김자영(예분 역), 홍예서(지윤 역), 정애화(옥임 역),
설시연(수정 역), 김현정(현경 역), 장준휘(종철 역)
제작 플라시보 픽쳐스
배급 ㈜인디스토리

2022 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2022 48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경쟁
2023 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의 자연X독립영화
2023 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국제장편경쟁
2023 16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
2023 14회 부산평화영화제, 장편경쟁
2023 18회 파리한국영화제, 페이사쥬
물비늘 임승현감독 김자영 홍예서 정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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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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