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서울의 봄>은 2023년 12월 6일 자 누적관객 52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사람들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20대와 30대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당시의 일을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경험한 나도 희미한 지경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또한 더 알아보려고 공부해야 겠다는 말도 한다고 한다.
패배한 민주주의의 역사, 한국 근현대사의 끝자락을 차지하는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거대한 역사의 한 부분이다. 내가 경험한 제5공화국의 이야기도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소문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음습하고 두렵고 무서운 소문과 함께 잠시 전시되고 흩어지는 사진으로 혹은 만화로, 라디오 드라마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일당들이 법적으로 처벌받은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의 입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렸으며 영화로 조금씩 접할 수 있었다.
역사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당시를 바로 보려는 마음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2010년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 민주주의 연구소가 편찬한 <한국민주화운동사 3: 서울의 봄부터 문민정부 수립까지>는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어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주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결말을 아는 불행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많은 관객들이 답답함을 누르면서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인간의 탐욕과 인간됨의 도리가 사라지는 그 어이없는 상황과, 어이없는 방식으로 국가가 무너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은 국가를 탈취하는 대도를 표방한다. 그들은 쿠데타가 아닌 혁명을 만들자고 말한다. 너무도 당당해서 보통의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배우의 연기지만, 쿠데타에 성공하고 마지막에 화장실에서 전두광이 미친 듯이 크게 웃는 장면에서는 한 인간의 권력을 향한 집념의 광기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느낌마저 든다.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입니다."
전두광의 같은 편이 되자는 이야기에 이태신(정우성) 수도경비사령관이 한 말이다. 모든 군인은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마땅하지만, 전두광은 자신을 위해 싸웠다. '하나회'로 특정되는 권력 집단에 맞서서 그들을 저지하려 했던 이태신 등은 전두광의 의도를 파악했고 최선을 다해 대응했으나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쿠데타 세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의 인생 마지막 또한 처참했다. 마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쥴퓌 리바넬리가 쓴 <마지막 섬>에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대통령까지 오른 인물이 나온다. 장기 집권 후 마지막 노후를 보내기 위해 섬에 정착한 그는 자기의 방식으로 섬을 통제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소설은 독재자의 권위주의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 "어딘가에 악이 존재한다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조금씩의 책임이 있다"라고.
"악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그에 맞서 대항하지 않는 모두는 그 악행에 일정 부분 동참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서서히' 독재자의 자리를 차지한 자들에게 처음부터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저항하는 것은 고귀한 것입니다."(쥴퓌 리바넬리, <마지막 섬> 중)
다시 50년 후 영화의 주역은 누가 될까? 그들만의 리그로 답답함을 주는 것이 아닌 관객을 통쾌하게 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