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레이스' 한 장면에이전시에서 일하던 박윤조 대리가 대기업에 입사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디지니+
"공채 아닌 것들이 이상한 짓을 한다니까. 씨, 쯧."
드라마의 배경인 대기업 '세용'의 홍보팀장 발언이다. 드라마에는 공채의 우월감을 보여주는 멘트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반대로 공채 출신들을 혐오하는 비공채 출신 직장인도 등장한다.
대기업은 대부분 공채 문화가 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기에 그들 간의 의리와 결속력은 끈끈하다. 입사 초부터 십수 년간, 퇴직 후에도 모임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문화 속에서 비공채 출신, 그것도 신입으로 15년간의 경쟁을 버텼다. 심지어 나는 대기업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출산 휴가를 떠난 직원을 대신해 3개월 동안 홍보팀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했다.
다행히 팀장 눈에 들어 3개월 아르바이트 연장, 1년의 계약직을 거친 후 공채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입사했다. 대놓고 차별하는 문화는 아니었지만, 학벌도 딸리는 편이었고, 공채를 챙기는 문화나 동기 모임 등에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조직에서는 공채, 비공채의 관계 문화뿐만 아니라 은근한 차별도 존재한다. 지나고 보니 나쁜 차별이라기보다는 공채 입사의 치열함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자 대우라는 생각이 든다.
비공채에 대한 차별 문제를 제기한 익명 게시판 글에 누군가 "누가 공채로 들어오지 말래?"라고 남긴 댓글에 씁쓸함을 느낀 적도 있지만, 스스로가 감당하고 헤쳐 나갈 문제였다. 비공채 직원은 대부분 경력직이기에 공채 직원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을 만큼의 업무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것이 바로 비공채의 경쟁력이다.
드라마 주인공 박윤조 대리도 '스펙아웃'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그간의 경력을 인정받아 대기업 홍보팀에 입사한다.
"저 경력 8년입니다. 팀장님."
"밖에서 뭘 했는지도 모르는 경력 8년, 세용 신입보다 못할 수도 있는 그 8년. 나한테는 박 대리, 신입과 별로 다를 바가 없어요. 알겠어요? 자기 위치?"
업무를 맡겨 달라는 주인공 박윤조 대리에게 팀장이 쏘아붙인 말이다. 대행사 경력 8년을 깡그리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동안 쌓아둔 경력과 실력을 차근차근 발휘해 팀장에게 인정 받는다.
나 역시 대기업 입사 시 에이전시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에서의 자잘한 경력과 경험을 살려 직장생활에 활용했다. 스스로 주변 동료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더욱 노력했다. 모든 업무에 성실하게 임하고자 애썼다. 덕분에 진급도 밀리지 않고 나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조직 생활에서는 출신성분이 아닌 자신의 업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공채 출신 중 마지막이 안 좋은 선배도 많았고, 비공채 중에서도 잘 나가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괜한 열등감으로 가슴앓이하며 보냈던 사회초년생 시절의 시간이 아쉬울 다름이다. 공채든 아니든 결국은 모두가 퇴사라는 출구를 향해 걷고 있는 직장인일 뿐이거늘.
쓸모 있는 갑질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