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마블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하지만 캐릭터의 성장과는 별개로 캡틴 마블 시리즈에 기대하는 주제가 희미해진 것은 아쉽다.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는 전작에서 보여준 페미니즘적 테마들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 팬서처럼 일찌감치 단독 시리즈를 시작한 남성 히어로와 달리 MCU 최초의 단독 여성 주연 영화라는 정체성 탓에 캡틴 마블이 걸어야 할 길은 일방통행이었다(로맨스가 빠진 건 불행 중 다행이다).
4년이 흐르고 세상이 변했다. <블랙 위도우>를 시작으로 <완다비전> <미즈 마블>, <쉬헐크>처럼 여성이 주인공인 시리즈가 늘어났다. 가족, 사랑, 육아, 사춘기, 커리어, 연애 그리고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가질 듬직하고 개성적인 동료들이 생겼다. 캡틴 마블이 떠맡아야 했던 '정체성'은 이제 페미니즘에 국한된 게 아니라 무한한 확장성과 함께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올 수 있는 주제다.
<더 마블스>는 이미 스크럴과 크리의 대립을 통해 난민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자유롭게 변신이 가능한 스크럴 족은 크리 족에게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는다. 정체성에 의한 편견과 제약으로 고통받았던 캡틴 마블이 두 종족 간의 갈등을 중재했다면 시리즈의 저변이 더 넓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다시 우주 난민이 된 스크럴이 뉴아스가르드로 피난을 가고, 늦게나마 크리의 태양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격리하는 데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