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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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임신은 평화를 깨고 균열을 일으킨다. 재이는 작가 경력을 망칠까 봐 임신중절을 원하고 건우는 가족을 꾸리는 삶을 원했다. 처음으로 둘은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등하고 대립한다. 건우는 간절하다. 아이만 낳으면 글만 쓸 수 있게 해주겠노라며 설득한다. 돈벌이, 가사, 육아까지 책임지겠다고 선언한다. 둘 사이에 찾아온 아기는 축복일까, 불행일까? 서로 지키려는 게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오랜 연인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 지붕 동상이몽의 섬세한 균형
이 영화의 미덕은 임신한 여성의 변화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은 여성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방관자가 아니다.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자 충돌의 대상이 되어 적극적으로 나선다. 서툴고 낯설지만 이겨내야 할 대등한 상황을 병치함으로써 동등한 관계성을 부여한다.
재이는 임신과 동시에 신체 변화로 힘겨워한다. 독서와 집필의 루틴이 잦은 졸음, 허리 통증, 요동치는 기분 변화로 침해받는다. 세상에 '나'로서 존재했던 때는 없었던 일인 듯 지워졌다. 세상에 자신을 걱정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만 같다. 모든 게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엄마'라는 이름을 새로 부여받아 '아이'가 우선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말끝마다 나는 없고 아이의 엄마이길 요구했다. 아이를 위한 음식과 영양제를 먹어야 하고, 좋은 것만 보고 들어야 한단다. 당혹스럽고 서운하며,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