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 감독이 연출했던 <킹콩>의 히로인 앤 대로우를 연기했던 영국출신배우 나오미 왓츠는 긴 무명생활 끝에 2001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멀홀랜드 드라이브>는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중 1위에 오른 작품이다). 하지만 나오미 왓츠는 출연하는 영화마다 크게 고생을 하거나 기구한 운명을 가진 캐릭터를 많이 연기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나오미 왓츠를 국내 관객들에게 알렸던 할리우드 버전 <링>에서는 의문의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하는 기자 레이첼 역을 맡아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나오미 왓츠에게 2003년 베니스영화제 관객상-여우주연상을 안겼던 <21그램>에서도 약물중독을 이겨내고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뜻밖의 사고로 가족을 잃게 되는 비운의 여인 크리스티나를 연기했다. 대괴수의 짝사랑을 받는 <킹콩> 역시 평범한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처럼 나오미 왓츠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기구하고 고생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그런 그녀의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으니 재난 영화 <더 임파서블>이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가족들과 함께 태국의 휴양지에 놀러 갔다가 아시아 8개국을 강타한 쓰나미에 휩쓸려 남편, 그리고 두 아들과 헤어지고 본인도 다리와 가슴에 큰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한다. 
 
 <더 임파서블>은 쓰나미에도 생존했던 스페인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더 임파서블>은 쓰나미에도 생존했던 스페인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롯데엔터테인먼트
 
실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재난영화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한 재난에 대처하는 인간의 사투와 생존 등을 그린 재난영화는 영화에서 단골로 쓰이는 소재다. 재난영화는 장르의 특성상 스케일이 커지고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지만 그만큼 관객들을 사로잡는 볼거리를 제공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장르다. 특히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실화소재의 재난 영화들은 상상력으로 만든 영화들에 비해 관객들에게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역대 실화소재 재난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영화는 단연 역대 세계흥행 4위(22억6400만 달러)에 빛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이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지난 1912년 북대서양에서 있었던 여객선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를 영화화한 <타이타닉>은 제작 당시 각계각층에서 있었던 우려를 씻고 각종 흥행신기록을 갈아 치웠고 재개봉 수익만 무려 4억 달러를 돌파했을 정도로 '역대급 흥행작'이 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만들고 대배우 톰 행크스가 출연했던 2016년 개봉작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지난 2009년 허드슨강 상공에서 있었던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비행기가 불시착 사고를 당했음에도 기장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으로 탑승객 155명 전원이 생존했던 실화를 다룬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제작비(6000만 달러)의 4배에 달하는 2억4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타노스로 유명한 조슈 브롤린이 주연을 맡은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2017년작 <온리 더 브레이브>는 2013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있었던 산불과 사투를 벌이다 순직한 소방관 19명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온리 더 브레이브>는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미국의 영화평론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87%, 관객점수 91%를 받았을 정도로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90년대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지난해 이태원 참사처럼 믿기 힘든 재난들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 민감한 소재라 이를 직접적으로 다룬 상업영화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만 2006년에 개봉한 유지태, 김지수, 엄지원 주연의 영화 <가을로>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전후를 재현한 바 있다. 하지만 <가을로>는 사고와 재난보다는 피해자들과 주변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끔찍한 재난 앞에선 부모도 그저 나약한 인간
 
 <더 임파서블>에서 나오미 왓츠가 연기한 마리아는 중상을 입은 상황에도 아들에게 "더 힘든 사람을 도우라"고 가르친다.
<더 임파서블>에서 나오미 왓츠가 연기한 마리아는 중상을 입은 상황에도 아들에게 "더 힘든 사람을 도우라"고 가르친다.롯데엔터테인먼트
 
<더 임파서블>은 지난 2004년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난민 169만 명이 발생하며 인류 역사상 최대 재난으로 꼽히는 '남아시아 대지진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미국에서 제작했지만 스페인 출신의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 연출을 담당했고 영국출신 배우 나오미 왓츠와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을 맡았다.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그렇듯 <더 임파서블> 역시 실질적인 '다국적 영화'인 셈이다.

<더 임파서블>은 북미에서 2012년 12월에 개봉해 연말과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린 대작들에 밀려 1900만 달러로 다소 아쉬운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더 임파서블>은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모국이자 영화의 모티브가 된 가족이 살고 있는 스페인에서 5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북미에서 시큰둥했던 <더 임파서블>이 세계적으로 1억98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이다.

<더 임파서블>은 쓰나미 당시의 무섭고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스페인과 태국을 오가며 60개의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특히 영화에서 마리아(나오미 왓츠 분)와 헨리(이완 맥그리거 분) 가족의 휴가지이자 끔찍한 쓰나미를 경험하게 되는 태국의 오키드 리조트는 실제 장소를 직접 빌려 촬영을 했다. 실제로 <더 임파서블>은 CG장면을 최소화하고 직접 세트를 제작해 당시의 끔찍했던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더 임파서블>의 진정한 관전포인트는 실감나는 쓰나미 장면의 재현이 아닌 끔찍한 재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내는 마리아와 헨리 가족의 생존과 노력, 그리고 가족애였다. 흔히 재난영화에서는 부모들이 자식들을 위해 초인적인 힘과 정신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더 임파서블>에서 마리아와 헨리는 초자연적인 재난 속에서 어린 자식들과 똑같이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평범한 인간으로 묘사됐다.

<더 임파서블>의 모티브가 된 스페인의 벨론 가족은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 당시의 끔찍한 기억을 차단하며 살았고 이 때문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요나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단순한 재난영화가 아닌 인간다움에 대해 묻는 영화"라며 벨론 가족을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다. 특히 엄마 마리아 벨론은 자신을 연기한 나오미 왓츠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배우의 캐릭터 몰입과 연기에 큰 도움을 줬다.

장남 연기한 톰 홀랜드, 또 다른 볼거리
 
 3형제 중 첫째 루카스를 연기한 톰 홀랜드는 4년 후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빼앗는 스파이더맨이 된다.
3형제 중 첫째 루카스를 연기한 톰 홀랜드는 4년 후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빼앗는 스파이더맨이 된다.롯데엔터테인먼트
 
나오미 왓츠는 <더 임파서블>에서도 쓰나미에 휩쓸려 고생을 하다가 다리와 가슴에 큰 부상을 당하는 마리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부상으로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후에도 아들 루카스(톰 홀랜드 분)를 걱정하던 마리아는 병원으로 이송된 후 루카스에게 "뭐라도, 아무거나 좋으니 가서 사람들을 도와"라며 아들을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보낸다. 나오미 왓츠는 <더 임파서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스타워즈>의 은하 공화국 제다이 기사 오비완 캐노비로 유명한 이완 맥그리거는 <더 임파서블>에서 쓰나미에 휩쓸려 아내, 큰 아들과 헤어지는 아빠 헨리 역을 맡았다. 헨리는 대피소에서 전화기를 빌려 장인어른과 통화를 하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헨리는 "이렇게 전화를 끊으면 안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독촉(?)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장인에게 전화를 걸어 "반드시 가족들과 함께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영화인 <더 임파서블>에는 나오미 왓츠와 이완 맥그리거 외에도 관객들에게 매우 익숙한 유명배우가 한 명 더 출연한다. 바로 '시민들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을 연기한 톰 홀랜드가 그 주인공이다. 홀랜드는 <더 임파서블>에서 마리아와 헨리의 장남 루카스 역을 맡았다. 철없는 소년 루카스가 쓰나미라는 엄청난 재난을 경험하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더 임파서블>의 또 다른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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