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마블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물론 1편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곳곳에 있다. 특히 캡틴 마블의 내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캡틴 마블>과 <엔드게임>에 이어 이번 영화 초반부까지 캐럴 댄버스는 독선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누구보다도 강력하기에 그녀는 옳다고 믿는 일을 저지르는 데 망설임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크리의 모성인 '할라'를 급습해 행성을 관리하는 A.I. '슈프림 인텔리전스'를 파괴했다. 관리 체계가 없어진 할라는 내전에 휩싸이고, 대기, 물, 태양광 같은 자원이 없어졌다. 이로 인해 캐럴에게는 '말살자'라는 이명이 붙었다. 또 이 오명을 혼자 힘으로 씻어내기로 결심하고 지구로의 귀환도 차일피일 미룬다. 그 때문에 어릴 때 캐럴을 가족처럼 따르던 모니카와의 관계도 엉망이 된다.
<더 마블스>는 캐럴 댄버스가 자기 독선과 오만으로 인한 과오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빌런 '다르-벤'과의 대결을 통해서는 본인이 초래한 참극을 직시하고 자기 힘으로 할라의 문제를 해결한다. 특히 자기 광팬인 고등학생 히어로 미즈 마블, 절친의 딸 모니카와 팀으로 활동한 대목이 주효했다. 부끄러운 과거와 고민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졌고, 독선적인 면모도 내려놓을 수 있었으므로.
우주 경찰 캡틴 마블, 지구 경찰 미국
MCU 속 캡틴 마블의 독특한 위상을 고려하면 그녀의 변화는 꽤 흥미로운 은유이기도 하다. 캡틴 마블은 압도적인 히어로다. 광속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고, 크리 족이나 타노스의 함선을 단신으로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 타노스와 일신으로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이를 현실의 지구에 대입하면 꽤 의미심장한 비유가 된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보여주기 때문. 캡틴 마블이 우주를 마음껏 넘나들듯이 미국은 지구의 바다와 공중을 넘나드는 유일한 국가다. 마음만 먹으면 나라 하나를 풍비백산할 수 있는 군사력을 투영할 수 있는 국제적 위상도 캡틴 마블의 존재감과 유사하다.
그런데 <더 마블스>는 캡틴 마블의 힘을 부정한다. 간신히 보금자리를 만든 후 크리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스크럴. 그러나 그들은 협정 체결 직전에 캡틴 마블 때문에 다시금 행성을 잃는다. 그들은 캡틴 마블을 비난한다. 힘이 얼마나 강한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설사 크리가 진심으로 평화를 원한 게 아니라 해도, 그녀 때문에 다시 한번 피해를 입었다면서.
이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를 비롯해 미국이 개입한 수많은 국제분쟁을 연상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그간 MCU 속 영웅들의 서사와도 일맥상통한다. 미국 군수산업의 모순을 지적한 아이언맨,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한 캡틴 아메리카와 유사한 국제관계 관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건만 남고 주인공은 사라지는 마법
문제는 1편처럼 엉성한 플롯이다. 부실한 완성도 때문에 영웅의 성장담도, 비유도 부분적으로만 드러난다. 배경을 쌓아 올릴 충분한 분량이 쌓이기도 전에 일단 사건 속으로 주인공을 던져 놓는다. 실제로 <더 마블스>는 시작과 동시에 점프 포인트 때문에 파괴된 행성과 세 주인공의 위치가 뒤바뀌는 문제를 보여준다. 이후 해결법을 찾고, 한 팀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좋게 보면 짧은 러닝타임에 걸맞은 시원한 전개다. 하지만 <더 마블스>의 핵심이 캡틴 마블의 성장과 팀업이라는 걸 고려하면 적절한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없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할 여유를 충분히 주지 않은 채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관객은 쏟아지는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바쁘다. 그 과정에서 주인들의 갈등도 날림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그들이 한 팀을 만드는 과정에 몰입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캐럴과 모니카의 갈등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캐럴의 절친이자 모니카의 어머니인 '마리아'(러샤나 린치)의 부고를 지키지 못한 일을 포함해 수십 년의 앙금이 쌓인 문제니까. 그런데 영화는 둘 사이에 활달한 제삼자 카말라를 완충지대로 투입해 10분도 되지 않은 사이에 모든 감정의 골을 메워 버린다. 캐럴이 자기 독선과 과오를 깨닫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정작 그 변화를 체감할 수가 없다.
즉, 영웅이 성장할 방향은 알려주지만, 사건에 캐릭터가 묻혀 버린 형국이다. 현란한 CG, 더 귀여워진 구스와 다른 아기 플러큰의 활약이 지나가고 나면 정작 주인공이 뭘 했고,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성장했고,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파악할 수가 없다. 이는 <토르: 러브 앤 썬더> <앤트맨 앤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목도한 문제와 똑같다.
조연도, 빌런도 함께 실종된다